비판의 위험과 정도[正道]
비판의 위험과 정도[正道]
  • 박영돈
  • 승인 2018.02.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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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판한 정이철 목사의 글에 대하여
바른믿음 화면 갈무리 ⓒ바른믿음

남을 비판하는데서 인간의 부패성이 가장 극렬하게 발동한다. 남을 무참히 짓밟고 파괴하려는 악랄한 폭력성과 자신이 절대적인 심판자 노릇하려는 악마적인 교만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 비판이 정당하고 건설적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부패성을 제어하는 은혜가 꼭 필요하다.

그 비판에서 은혜의 주관을 받는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 안에 가득한 악의 오물을 그대로 토해내는 위인인지가 드러난다. 그런 인간일수록 진리와 정통 신학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방어막을 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와 바른 신앙을 악을 마음대로 자행하면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악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죄를 가중하는 사특함이다.

우리 교회에 건설적인 비판은 꼭 필요하다. 이런 비판은 성령의 주관을 받는 선한 마음, 겸손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신중하게 행하는 판단이다. 진리를 논하고 사수하는 이들은 비판하는 자세와 방법도 진리 위에 선 사람답게 겸손하고 진실하며 편벽됨이 없이 공정해야 한다.

어떤 글을 비판할 때는 그 내용을 정확히 숙지하고 전체 맥락 속에서 저자가 어떤 의도로 무슨 말을 하는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내 입장에서 비판하기 전에 먼저 저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애써도 우리는 주관적으로 치우치는 강한 성향을 가진 존재이기에 공정하게 비판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글의 전체 논지와 문맥과 전혀 상관없이 한 두 문장을 뽑아내서 자기 멋대로 왜곡하고,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악하게 비틀어서 거짓을 지어내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욱이 자신과 조금만 다르면 이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정죄하는 행위는 극악무도한 범죄이다. 교회역사 속에서 어떤 이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은 극도의 신중함과 엄중함을 기하는 일이었다. 초대교회 공의회가 보여준 것처럼 온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오랜 연구와 토론을 거쳐 이단결정을 내렸다.

지금도 어떤 견해를 이단으로 규정할 때는 범 교회적으로나 아니면 최소한 교단 차원에서 여러 전문 신학자들의 연구와 분석을 거쳐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학적인 전문 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신앙관과 인격이 균형 잡히지 않은 한 개인이 자신의 무지하고 왜곡된 이해의 틀에 맞지 않으면 모조리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이단이며 거짓 영에 사로잡힌 자라고 낙인찍는 것은 그 사람에게 영원한 파멸을 선고하는 일이다. 애매한 사람을 그렇게 정죄하는 이는 결국 자신에게 그 정죄가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다(7:2). 누가 우리의 글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난도질 해놓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신자는 비판에서도 다른 이가 나에게 해주기 원하는 대로 나도 행해야 한다는 황금률을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를 비판한 정이철 목사의 글에서 성경해석과 신학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정 목사의 판단의 잣대를 만약 그에게 들이댄다면 그는 이단의 괴수로도 단죄 받을 수 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 일일이 까발려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줄 수 있지만 그와 똑같은 수준에서 맞대응하고 싶지는 않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에서 나는 방언에 대한 논쟁과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었다. 물론 나와 견해를 달리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중하게 나는 이런 이견이 있다는 식으로 논의를 펼쳐간다면 얼마나 건설적인 대화의 장이 열리겠는가. 자신과 다르다고 거짓 영에 사로잡혔다고 정죄하니 어떻게 의미 있는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그런 식으로 나를 매도하면 대부분의 한국 목사와 교인들도 거짓 영에 사로잡힌 이들이 될 것이다.

나는 정이철 목사가 이런 과오를 속히 깨달고 변화되기를 바란다. 그가 아직 젊으니 그런 희망이 있다고 본다. 나는 그를 정죄하기보다는 주 안에서 진심으로 그의 잘됨을 위해 권면하고 싶다. 만약 정 목사의 비판하는 자세가 새로워진다면, 그는 주님의 교회와 동역자들을 겸손하게 섬기며 진리를 수호하는 귀한 일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 정 목사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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