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무슬림 기도실 설치 무산된 이유는?
평창 올림픽 무슬림 기도실 설치 무산된 이유는?
  • 이재원
  • 승인 2018.02.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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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뉴스 화면 갈무리 CBS
CBS 뉴스 화면 갈무리 ⓒCBS

지난 18일 조선일보는 평창올림픽 무슬림 기도실 설치에 관련한 소식을 전했다. 올해 한류 바람을 타고 무슬림 관광객이 100만 명 이상이 될 것 이라며 6년 새 2배 이상 한국을 찾는 무슬림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한국 여행에서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이 종교 규율을 지키기 위한 기도실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평창 올림픽 기간 무슬림 선수와 관광객을 위한 이동식 기도실이 총 2개동 설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올림픽 주최측에서 좀 더 편안하게 올림픽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라는 평이다.

그런데 일부 개신교에서 의외의 반응을 보여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5일자 뉴스앤조이는 '평창 올림픽 이슬람 대책 강원도민 운동본부'라는 단체가 받고 있는 서명에는 2 5일 오후 6시 기준 2 7000명이 참여했다고 전하며  이들은 "무슬림 기도실은 특정 종교 특혜이며건전한 생각을 가진 국민을 힘들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결국 무실림 기도실 설치 계획이 무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온라인에서 보수 개신교인들 중심으로 '관광공사와 강릉시에 무슬림 이동식 기도실 설치에 항의 전화를 하자'는 내용의 메시지가 담당자의 전화번호와 함께 퍼져나갔고, '무슬림 기도실 설치 반대 서명' 사이트에는 7일 오후 12시 기준 54040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반대의 명분으로는 '특정 종교 특혜''근본주의 무슬림 경계' '과격 이슬람의 유입 막는 세계 흐름과 반대되는 움직임' 등을 내세웠다.

개신교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은 이제는 별로 새로운 일은 아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형제 종교인 가톨릭이나 불교에서는 이런 반응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상적인 현상이다. 왜 개신교는 이런 반응을 보일까개신교 목회자 이면서 중동 전문가인 김동문 목사는 20179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세계 이슬람 인구가 17억 명이 넘습니다. 세계 3대 종교로 꼽힐 만큼 전통도 깊죠. 하지만 여전히 바깥의 시선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습니다. 무지로 인한 근거 없는 비판은 갈등만 악화시킬 뿐이에요.”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라는 책을 출간한 김동문 목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집필한 책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멀리 미국(이 글은 쓰는 현재는 이스라엘에)에 있는 저자를 대신해 그의 책을 통해 가상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1. 일부 보수 개신교는 언제부터 이슬람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나요?

2008년 전후로 반이슬람 정서가 한국 사회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한국 기독교계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을 바로 알아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달갑지 않아하는 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08년 전후로 좀 더 조직적이고 큰 흐름의 공격적 형태 의 이슬람포비아가 등장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08년 가을 주목할 만한 이벤트가 서울의 강남에서 개최되었습니다. 2008930일 사랑의교회와 <국민일보> 주최로 '사랑의교회 창립 30주년, <국민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이슬람이 오고 있다" 특별기획 협약식이 사랑의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일보>는 특집 연재기사를 냈습니다. 사랑의교회는 그 연장선상에서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국민일보> 노승숙 당시 회장은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의 심각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 팽배해져가고 있습니다. 가장 무섭게 다가오는 이슬람권이 우리나라를 정복하겠다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랑의교회가 결단을 내려주셔서 위기의식을 가지고 이슬람을 향한 특별 협약식을 이루게 되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선 한국교회가 이러한 이슬람의 진상을 바로알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한국 교회에 크게 역사해주 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후 <국민일보>12회에 걸쳐 연재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해 125일 사랑의교회에서는 "1회 이슬람이 오고 있다" 국제포럼을 개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이런 분위기를 이끈 것은 ᄌ선교회였습니다. 이 단체 관계자들은 20067월 윌리엄 와그너(William Wagner)이슬람의 세계 지배 전략(아포스톨로스프레스) 한국어판 출간기념 강연회를 주도했습니다. 이들은 이후에도 크고 작은 이슬람포비아 입장 의 목소리를 주도적으로 냈습니다. 2008년 봄 ᄌ선교회 회지를 살펴보면, 이슬람화 전략설을 주장하고 곳곳에서 강연회를 여는 등 이슬람 포비아 입장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그러다 <국민일보>의 집중 보도와 사랑의교회 포럼 등을 전후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이 자체 동영상을 제작하고 산하 교회들을 교육하면서 전방위적인 이슬람경계론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p92-93)

 

2. 이들이 무슬림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국내 안보가 위험하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요?

또 국내에 체류하는 잠재적 IS대원들에 대한 감시와 추적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이슬람권 국가 57개국 출신 155,000명이 국내에 들어와 있다""국정원이 관련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도록 통신감청금융추적 추가조치(테러방지법)가 필요한데 야당의 반대로 못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버나드 루이스 지음, 김호동 옮김, <이슬람 1400>(까치, 2003), p.330)

위 책에서처럼 "잠재적 IS 대원 = 이슬람권 국가 57개국 출신" 식의 언급은 이슬람포비아의 전형적인 주장입니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슬람권 국가 57 개국"이라 일컬어지는 OIC 국가 출신 외국인은 다 무슬림인가? 물론 아닙니다. OIC'이슬람협력기구'(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의 줄임말로 1969년 이슬람 국가들의 연대, 협력 등을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기구입니다. OIC 가입 국가 57개국 중에도 기독교인 인 구가 무슬림 인구를 압도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봉은 무슬림 인구가 1% 정도인 데 비해 기독교인 인구는 55-75%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모잠비크도 무슬림 인구 (17-20%)보다 기독교인 인구(30-41%)가 크게 앞서고 있습니다. 카메룬도 비슷합니다. 카메룬의 무슬림 인구(20-22%)는 기독교인 인구(40%) 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토고도 무슬림 인구(13-20%)보다 기독교인 인구(29%)가 많습니다. 남미의 가이아나는 무슬림 인구(7.2%)가 기독교인 인구(41-50%)에 비해 턱없이 적습니다. 수리남도 무슬림 인구가 13- 19% 정도로, 48%에 달하는 기독교인 인구보다 매우 적습니다. 탄자니아는 무슬림 인구(35-45%)가 기독교인 인구(30%)를 조금 앞서는 수준입니다. 이슬람 국가(이슬람이 국교이거나 주류 종교인 국가) 출신이라고 해도 무슬림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 국가에도 적잖은 기독교인이나 타 종교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OIC 가입 국가 출신 외국인을 모두 무슬림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과 심지어 정부 기관도 국내 무슬림 인구를 잘못 추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종교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국내 거주 무슬림 인구를 정확하게 산출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출입국 관련 기록은 물론 외국인 등록을 할 때 작성하는 개인 신상 카드에도 종교난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특정 국가 출신을 무슬림으로 간주하고,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IS 대원으로 낙인찍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판단입니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p.127-128)

 

CBS 뉴스 화면 갈무리 ⓒCBS

3. 이번에 문제가 된 무슬림 기도실과 관련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보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셨는데요?

많은 이들이 '모든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모든 무슬림은 매주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많이 다릅니다. 아랍 이슬람 지역의 무슬림의 삶은 마치 서구 기독교 문명권의 유럽인들과 비슷합니다. 명목상의 기독교인, 문화적 기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처럼 이슬람 세계의 무슬림 다수도 명목상의 무슬림 입니다. 반면에 서구 유럽인들은 종교를 선택할 수 있지만, 아랍 무슬림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날 때부터 종교가 부여 됩니다. 이런 정체성의 무슬림들에게 종교 의식은 어떤 의미일까요?

다양한 통계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이슬람 세계(중동 지역)의 중심지보다는 아프리카 지역 무슬림들의 종교성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슬람 사원 예배 출석률도 아프리카 지역이 높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점은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국가 무슬림의 이슬람 사원 예배 불참률입니다.

레바논인 들의 "종교 행위 중 사원 또는 교회(성당) 출석률에 관한 자료"(2008)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드루즈파 무슬림은 거의 탈종교화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래도 정기적으로 사원을 찾는 무슬림 비율은 절반정도입니다. 사원 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무슬림 비율이 37%(순니파), 45%(시아파)인 것은 인상적입니다. 이것이 2008년 자료이고, 종교성에 관한 한 최대치를 보여주고픈 심리적 반응 등을 고려 할 때 명목상의 무슬림이 지금은 훨씬 더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무슬림의 관심사가 '좋은 설교'를 듣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자가 있는 사원을 찾아다니는 무슬림이 늘고 있습니다. 아울러 프로그램이 좋은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슬람사원은 문화행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꾸란 학습 같은 좁은 의미의 종교교육이 전부이거나 그조차도 없었습니다.

화는 이민 사회 무슬림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민 사회는 전통적인 이슬람 사원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역 사회 현안을 다루거나 무슬림 이민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종교 교육 프로그램, 문화 이벤트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민 사회 무슬림들 가운데 이런 프로그램을 따라 돌아다니는 이들을 가리켜 '떠돌이 예배자'(Wandering Worshipper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적지 않은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도 단지 예배드리고 꾸란을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의 커뮤니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p.35-37)

우리주변의모든 불자가 불경에 도통하고, 도제중생에 매진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스님 이라고 하여 모든 불경의 깊은 깨달음을 설법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나 가톨릭 신자라고 하여 모두가 성서에 능통한 것도, 예수의 삶을 따라 이타적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무슬림' 하면 히잡을 쓰고,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하고, 라마단 기간을 철저히 지키는 등 엄격한 종교예식을 고수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물론 그런 철저한(?) 종교적 무슬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현대를 사는 다수의 무슬림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p.26-27)

 

4.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오해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26년간 아랍에 머물고 오고가며 경험하신 전문가로서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평가하려면 기준이 공정해야 합니다. 평가를 위해 유사한 개인이나 집단과 비교, 분석 하려면 비교 대상이 동일한 기준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객관적이지 않은 평가와 진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 이슬람과 종교인 무슬림을 평가하고 비교할 때 그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잘못된 평가와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누가 무슬림인가?'라는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종교를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꼭 전수해야 하는 집안의 내력이나 고수해야 할 가문의 전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슬림은 지금도 집안 내력, 가문의 전통으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생각 하는 무슬림과 무슬림 스스로가 생각하는 무슬림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인의 판단 기준과 무슬림이 생각하는 종교인의 판단 기준이 다르기에 공정한 비교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비교 평가를 하려면 기준을 맞춰야 합니다. 종교를 개인의 종교로 볼 것인가, 가문과 집안의 내력으로 볼 것인가?

우리의 이슬람 이해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습니다. 이미 잘못된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인격으로 보이지 않는 이슬람 그리고 무슬림. 어쩌면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그들을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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