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2일 (한국 개봉)
(감독) 르노 페리, 아노드 루베,
(주연) 엘리오 제르마노(프치스코 역), 제레미 레니에(엘리야 역)
“주님 보시기에 우린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풀 같을 뿐이요”
영화의 배경은 13세기 초이다. 1209년 여름, 성 프란치스코와 ‘작은형제회’ 는 평등한 인간, 무소유의 삶을 교리로 삼고 교황청에 정식으로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인준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교리라는 이유와 성직자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는 규칙 조항 등을 이유로 거절당한다. 이 일로 ‘작은형제회’ 안에서 프란치스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인 성 프란치스코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 프란치스코 (1182?∼1226)는 굳이 종교가 없는 사람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최초의 탁발수도회(Ordines mendicantium, 托鉢修道會)를 창설한 그의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그가 보여준 ‘나눔’의 삶은, ‘사랑’의 귀감이 되었다.
이 영화 속에서, 그의 ‘무소유’와 ‘무조건적 사랑’은 세상과 충돌하고, 심지어 새로운 수도회 인준에도 문제가 되며, 이는 함께 수도회를 만들어가는 작은형제회의 엘리야와의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교황청이 문제 삼은, 성직자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수도 규칙 수정 여부를 두고 수정하자는 현실주의자 엘리야와 프란치스코가 갈등을 빚는다. 엘리야는 말한다 :
‘여러분처럼 나도 세상을 돕고 싶은 거요’, ‘지금은 가진 게 없어서 제대로 돕지 못 해요’
21세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소유’를 실천하는 ‘탁발’은 매우 낙후된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프란치스코는, 어떤 유형의 ‘소유’도 탐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탁발 원칙을 고수하는 수도사들은 격렬하게 반대한다.
‘소유하기 시작하면 땅에서 그치지 않을 거요’
그래서 그들은 애초에 소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 ‘소유’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년)도 ‘소유냐 삶이냐/사랑한다는 것‘(동서문화사, 2016년)에서 이렇게 말했다.
“If I am what I have and if what I have is lost, who then am I?”
내 소유가 나의 존재를 규정한다면, 나의 소유가 사라졌을 때, 나는 그럼 누구인가?
소유는 존재를 규정할 수 없다. 우리는 수 백 년 전, 성 프란치스코와 탁발수도회 수사들처럼 ‘소유’의 고리를 끊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내 삶의 중심을 잠식하지 않도록, 부지런하게 자기 점검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생각난다. 그 얘기가 상당 부분 사실이라면, 죽을 때까지 겁나게 열심히 써도 다 쓸 수 없을 만큼의 돈이 이미 있는 사람인데, 왜 그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을 숨기느라고 그렇게 애를 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규칙적으로 이뤄지는 번역료 입금이, 빛의 속도로 출금과 이체로 사라지고, 저렴하게 착한 통장 잔고에 익숙하게 살아가는 내게는, 먼먼 딴 나라 이야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1200년대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형제회 수도회 설립과 인준, 이를 둘러싼 갈등은, 자본주의에 잠식되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큰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