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숨 쉬듯 위선을 어릴 적부터 익힌다
우리는 숨 쉬듯 위선을 어릴 적부터 익힌다
  • 김영웅
  • 승인 2018.01.30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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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 화면 갈무리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JTBC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우린 마치 자신이 그 역할에 가장 적격인 것처럼 보이고 증명해야 하는 위선을 즐기며 또 가치 있게 여긴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란 어릴 적 동화책 읽던 시절에 이미 잃어버리거나 버려버린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숨 쉬듯 위선을 어릴 적부터 익힌다. 내가 누군지 알기 전, 먼저 남의 시선에 어떻게 맞출 지를 배운다. 그것이 함께 사는 지혜라고, 그것이 남을 위한 배려라고 하면서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고용할 땐 그 포지션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적합하게 보이는 사람을 뽑게 된다. 이 때 뜻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은 연기력이다. 연기를 가장 그럴듯하게 해내는 사람이 고용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배운 위선의 기술은 이 순간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낸다. 인터뷰에 성공한 자는 이미 자신은 오래 전부터 지혜의 열매를 따먹었기에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남들에게 전수해주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 힘들다. 자기계발서를 쓴다. 일종의 처세술이다. 어릴 적부터 처세하는 법을 익히면 사회에서 남들보다 빠르고 쉽게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는 논리다.

처세술을 삶의 지혜로 숭배하는 이들에겐 눈치 보는 기술이 핵심이다. 본질은 중요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본질을 중시한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마도 그들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말은 고지식하다는 것일 게다. 그들은 원만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진실성은 필요 없다. 진실한 척만 잘하면 된다. 때론 순진하게 보일 줄도 알아야 한다. 기술은 연마할수록 느는 법이다. 사람에 따라서, 모임에 따라서 카멜레온처럼 모습을 바꿀 줄 알게 된다. 솔직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실패를 성공 다음에 겪는 비극을 피하지 못한다. 이른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어두운 밤 집 안에 홀로 진실의 거울 앞에 섰을 땐 깊은 고독과 절망을 느낀다. 좀 전까지만 해도 모임에서 가장 쾌활하게 보이며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 어린 눈총을 받았었다. 그러나 혼자가 되었을 땐 다른 사람이 되는 거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때론 정신분열로 때론 다중인격으로 진화한다. 이미 얻은 성공 때문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했다간 그 동안 자신이 누려온 모든 것을 시궁창에 스스로 내팽개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안 된다. 그렇다고 현재를 지속할 수도 없다. 신물이 나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이다. 타개책은 뭘까?

함께 사는 지혜와 남을 위한 배려를 이른 시기부터 익혔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그 지혜라는 처세술의 목적이 자기 자신의 유익에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살고 남을 생각하는 지혜도 결국 자신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외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었지만, 내적인 실패를 가져왔다. 내면세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이런 안과 밖의 부조화는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상처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방법이 목적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좋은 방법도 목적이 자신의 이익에 있을 때, 그 종국은 결국 파멸인 것이다. 물론 그 파멸 전에 단맛을 보는 시기가 있다. 아주 잠깐 말이다. 적어도 그러한 찰나의 단맛을 위해 내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런 곳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목적을 남에게로 돌리자. 그러면 '우리'라는 의미가 비로소 살아나고 마침내 ''가 그렇게나 원했던 행복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흔이 지난 난 현재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인생 절반을 ''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에게서 ''에게로 가는 여정을 난 인생이라 부른다. 함께 가는 것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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