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용서
회개와 용서
  • 권영진
  • 승인 2018.01.24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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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어렸을 적에 큰 잘못을 한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전 매타작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일이었습니다. 가슴은 두근대고 일분일초가 지옥 같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오실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지만 당연하게도 그 시간은 정확히 도래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거 누가 그랬어!" 하는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시치미를 뗄까?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할까?' 얼굴은 달아오르고 짧은 찰나에 수많은 경우의 수들이 지나갑니다.

가슴은 터질 것만 같습니다. 양심의 고발과 도피에 대한 유혹을 포함한 수많은 갈등 속에서 어렵게, 어렵게 "제가 그랬습니다, 잘못했어요" 라고 말을 꺼냅니다. 저에게 순식간에 쏠리는 따갑고 날카로운 눈초리!!!

영겁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에 뜻밖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이 녀석 용케 정직하게 인정하네? 원래는 좀 맞아야 정신이 들텐데 이미 정신 차렸으니 이번은 넘어간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은 벅차오르고 뭐가 뭔지 모를 느낌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끅끅 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 머리를 슥슥 문지르시며 "괜찮다 앞으로 잘하면 돼"라고 말씀하시는 그 목소리에 더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는 말이 매보다도 더 무겁게 가슴에 와 박힙니다. 회한과 안도감, 수치스러움과 공포, 기쁨과 감사가 마구 소용돌이칩니다. 그 시간의 느낌은 뭐라 말로 형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회개와 용서의 근본적 개념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런 느낌과 자세를 너무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어려운 신학적 용어들을 남발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진실하고 정직한 회개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진실로 [어린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곳입니다. 혹시 우리는 오늘도 가식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과 익숙함 때문에 진실한 마음과 애통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권영진 목사는 정언향 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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