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항상 언변을 통해서 표현됨을 배운다
지혜는 항상 언변을 통해서 표현됨을 배운다
  • 김상일
  • 승인 2018.01.21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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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를 통해서였다. 가다머는 해석학과 수사학은 서로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해석학은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며, 수사학은 그러한 이해가 특정한 문화라는 그릇에 담기는 방식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어떠한 이해는 특정한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나고, 그러한 문화적 표현과 논증 방식은 그 해석학적 이해 자체와 분리될 수 없다.

What Is Rhetorical Theology? Textual Practice and Public Discourse, 80쪽 정도의 두께로 아주 얇은 이 책은 그 얇기와는 달리 지혜와 언변(wisdom and eloquence) 사이의 관계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꽤나 잘 추적하며, 수사가(orator)는 언변이 좋은 선한 사람(a good man skilled in speaking)이라고 정의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헬라 전통이 수사학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잘해봐야 2등 학문으로 취급한다. 반면, 이 책은 키케로(Cicero)와 퀸틸리우스(Quintilius, B.C. 46 ~ A.D. 9)라는 두 걸출한 수사가들로 대표되는 라틴 전통에서 수사학을 가져오고, 그 전통이 정작 기독교 신학에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큰 영향을 주었음을 논증한다.

이 책에서 내가 배우는 건 언변이 좋은 것은 단순히 자기 주장을 잘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상호 이해와 사회 통합, 그리고 의사 소통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혜는 항상 언변을 통해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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