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김영준]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 김영준
  • 승인 2018.01.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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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설교 노트 _ 행 3:1~10
Raphael, The Healing of the Lame Man, 1515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타고났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닮은 아이들을 볼 때,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드는 건,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좌절의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은 따지고 보면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데, 하나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야속하지만, 현실입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미문(美門)이라는 성전 문'에서 구걸을 합니다(3:2). 앉은뱅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지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진실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못 걷는 거지가 구걸을 합니다(3:3). 태어나면서부터 못 걷는 거지는 '은과 금'을 구합니다. 거지가 은과 금을 구하는 것은 언뜻 당연해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못 걷는 거지가 구해야 할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걷는 것'입니다. 걷게 되어 거지 생활을 청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기도해야하는지 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거지가 구걸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태어나면서부터 못 걷는 거지가 구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에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6)"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니 태어나면서부터 못 걷는 거지가 뛰어 서서 걷습니다(3:8). 은과 금을 구걸하는 자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더니 앉은뱅이가 걷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이기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을 수 있을까요?

'나사렛'은 아기였던 예수님께서 헤롯 왕 부자(父子)를 피해 도망자가 되셔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망명지였습니다(2:23).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아기였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세상의 권력을 피해 숨어 들어갔던 곳이 나사렛이었습니다. 후에 청년이 된 나사렛의 예수는 헤롯과 로마 권력을 제압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야망을 따라 메시아의 길을 갔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는 실패한 메시아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는 메시아의 길을 갔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더 이상 메시아일 수 없습니다.

실패한 메시아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그리스도(메시아)'라 고백합니다. '부활'때문입니다. 나사렛의 망명자였던 예수님은 분명 실패했지만, 부활하셨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분명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갖게 되셨습니다(2:9).

'나사렛 예수''그리스도'는 모순된 조합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도망자의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승자의 이름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어 한이 서린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영광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태어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에게 은과 금을 주지 않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줍니다.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도망자가 메시아라고 선포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자가 메시아라고 선포합니다. 도망자가 메시아라면, 죽임 당한 자가 메시아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나사렛 예수가 부활했다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는 걷는 자입니다. 약하고 한 맺힌 이름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앉은뱅이가 걷는 자입니다.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 선포하니, 앉은뱅이가 걷습니다. 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던 상황과 조건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던 사람이 걷게 되니 사람들이 놀랍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3:9~10)"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병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무능함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야속한 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망을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망을 듣지 않으시고 찬송을 받으실 것입니다. 사람이 처한 야속한 현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속한 현실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의 찬송을 받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찬송하는 우리를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십니다.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니, 우리가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글쓴이 김영준목사는, 김포에서 발달장애인, 이주여성들이 함께하는 카페 ‘민들레와 달팽이’를 운영하는, 민들레교회의 담임목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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