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4일에 썼던 제 일기입니다. 연약한 가운데서 서로를 돌보기에 힘쓰는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눕니다.
“한 선교사님이 나누어주신 이야기를 듣다가 내게도 일어났던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긴다. 내게 정말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대전에 살던 시절의 기억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내 막내 동생은 두 살 박이 아기였을 때다. 나는 친했던 동네 형과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두 살짜리 내 동생은 아장거리며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동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금새 잊어버린 걸 보면 꽤 신나게 놀고 있었나보다.
느닷없이 비명 소리가 들리고 아이가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그만 부스를 세내어 수선집을 하고 있던 어머니가 느닷없이 뛰쳐나왔고 뒤 따라 바로 옆 피아노학원 원장님도 뜨거운 불 위를 걷듯 종종 거리며 뛰어나왔다. 난 그저 넋이 나간 채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머니가 아직 시동이 켜있는 봉고차의 앞바퀴에 딱 붙어 있는 아기, 그러니까 내 동생의 머리를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 얼른 감싸 안고 끌어냈다.
아이가 아장 거리던 것을 못 본 운전사 아저씨가 차에 시동을 켜고 가속페달을 밟는 동시에 아기가 넘어져서 범퍼 밑으로 굴러들어갔다. 반 바퀴정도 굴러간 바퀴는 이제 막 이 녀석의 머리를 밟고 넘으려 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분 -아마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었던 것 같다-이 비명을 내 질렀다. 다행히 봉고차의 창이 열려 있어 운전자도 비명을 듣고는 금새 차를 멈췄다. 얼굴이 하얗게 떠 오른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난 그제서 정신이 들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어린 막내를 돌보라고 맡기신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땅에서야 이런 일이 비상식적인 일이다. 반드시 어머니가 어린 아이들 돌봐야한다. 그렇지만, 그땐 다 그랬다. 아이가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면 으레 언니 오빠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당연했다. 그것도 내내 어머니가 보고 계시다가 옆 피아노 원장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느라 나에게 바통이 넘어온 것이었을 뿐이다.
그 때 철렁하고 심장 내려앉던 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들린다. 막내 동생이 잘못되기라도 했더라면 난 평생 죄책감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어머님 역시 아직 어린 아들에게 아기를 맡긴 무책임함을 탓하며 평생을 사셨을 게다. 지금 그 막내 동생은 좋은 신랑을 만나 예쁜 딸 아이 하나를 낳고 잘 살고 있다. 그때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차를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했더라면, 봉고차 운전사가 비명 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 생각하기도 싫다.
난 그 일이 전혀 손 쓸 수 없는 문제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내미신 손길이었음을 안다. 어찌 해 볼 수 없는 무수한 위험들이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때로 우리를 영혼과 몸을 칼날처럼 뚫고 지나기도 하며, 또 거기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 또한 우리네 삶이다. 매일 매순간이 은혜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당연히도 여긴다. 아니 아예 잊고 살아간다. 그때 그 은혜는 오늘의 나와 내 동생과 이제 전도사님이 된 그 동생의 남편과, 동생의 딸이자 나의 조카인 너무나 영특한 소녀에게로 이어져있다. 잊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감사하다.”
요즘 우리 교회엔 힘겨운 일을 겪느라 지쳐 있는 성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든 함께 부둥켜안고 가려 하는 우리의 마음도 더욱 진해지는 시절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부디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그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고 나눌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