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혐오와 차별에 앞장 서는가
누가 혐오와 차별에 앞장 서는가
  • 김재수
  • 승인 2018.01.05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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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여러 숫자가 쓰인 회전판을 돌립니다. 회전판은 간단한 조작을 통해 10 또는 65 라는 숫자 중 하나에 멈추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숫자를 확인한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들이 전체 UN 국가들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입니까?” 행동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83)과 그의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A. Tversky,1937~96 교수가 오래 전에 고안한 실험입니다.

10을 본 학생들의 대답을 모아 평균을 계산하니 25 %로 나타났습니다. 65을 본 학생들의 대답은 평균 45%입니다. 두 숫자는 질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학생들의 대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닻 내림 효과 anchoring effect 라고 부릅니다. 불확실성과 의문이 가득할 때, 우리는 어디에든 닻을 내리고 싶은 심리적 편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사결정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에서 마저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저는 KPOP 가수들의 콘서트 티켓을 파는 실험을 합니다. 학생들에게 먼저 주민번호 끝자리 두 자리수를 쓰라고 한 후, 얼마의 가격에 티켓을 살 것인지 물어 봅니다. 끝자리 수 00-19, 20-39, 40-59, 60-79, 80-99의 순서대로, 학생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겠다고 답을 합니다.

종교의 경전이 지니는 가장 큰 힘은 닻내림입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숫자도 의사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책을 자주 들여다보는 일은 잠시 닻을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장기간 정박을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혐오와 차별에 서슴없이 앞장서는 이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이유는 다름 아닌 성서 때문입니까.

성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쓰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성서의 구절에서 감동을 받는 이들은 자기희생을 통해 모든 경계를 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이라는 성서의 구절에서 감동을 받는 이들은 경계 밖의 사람들을 혐오하기 위해 애씁니다.

논쟁적이고 갈등을 야기하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관련 연구들을 소개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수들이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입니다. 성서에 대해서도 어려운 질문에 맞닥뜨리면 성서학자들의 연구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 당연한 말이 무시되는 곳은 다름 아닌 종교기관입니다. 학자들 중에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가장 무시당하는 이들을 성서학자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애리조나 대학 경제학과의 노스크래프트(Gregory Northcraft)와 네일(MargaretNeale) 교수는 1987년 투싼(Tucson)이라는 도시에서 활동하는 가장 신뢰받는 부동산업자들을 초대했습니다.http://web.missouri.edu/segerti/capstone/northcraft_neale.pdf 이들에게 가정 주택 하나를 보여주고, 주변 부동산의 시세 및 거래량과 같은 관련 정보들을 제공했습니다. 부동산업자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어 집주인이 요구한 판매가를 서로 다르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각각 $119,900, $129,000, $139,000, $149,000 의 판매가를 제시받았습니다. 이들에게 얼마의 가격이면 해당 주택을 사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시받은 가장 높은 판매가와 낮은 판매가의 차이는 $30,000 이지만, 두 그룹의 부동산업자들이 제시한 구매 가격의 차이는 $16,000 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도 닻내림 효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실험을 일반인들 대상으로 하면, $31,000 정도의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에 비해서 작은 심리적 편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서 읽기는 위험을 동반합니다. 성서를 열심히 읽고 혐오와 차별에 닻을 내리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쓴이 김재수 교수는, '99%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로, 미국 중부 인디애나-퍼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밥벌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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