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양진일
  • 승인 2017.11.0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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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믿는 것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나귀 한 마리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나귀 한 마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믿는 행위 이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인 것처럼 믿고 섬긴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습니까? 일반적인 신의 이미지를 하나님에게 갖다 붙이고 하나님을 그런 존재를 섬기고 숭배한다면 실상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닌 우상을 섬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히 살펴보는 일은 신앙에 있어 토대와 같은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게 다섯 가지 점에서 고대근동의 일반적인 신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십니다. 다신교가 지배하던 세계에서 유일신을 천명하심, 일상의 노동을 중시하심, 제물보다 헌제자의 삶을 더 주목하심, 가난하고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심, 아내신이 없으시고 대신 자신과 언약관계를 체결한 백성들을 아내라 부르심 등이 그 내용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 하나님은 자신만이 세계의 유일한 신이심을 천명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다신교나 일신교가 보편적인 신앙의 양태였습니다. 다신교는 여러 영역과 지역을 주관하는 신들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일신교는 여러 신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 신만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유일신교는 오직 세상에 한 신만이 참 신이며, 그 신만을 섬기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신이 아님을 주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언약백성 이스라엘에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는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1계명 위반이자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일상의 노동을 중시하십니다. 고대사회는 노동을 천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신교 사고속에서도 하위신들은 노동하지만 상위신들은 노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상위신들의 지상대리자가 왕과 같은 권력자들이고, 하위신들의 지상대리자가 평민이나 노비와 같은 존재로서 노동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유일신이신 하나님은 흙을 빚는 노동을 통해 인간과 동물을 창조하셨고,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에게도 6일간의 노동을 요구하셨습니다. 육으로 행하던 노동을 천하게 생각했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육으로 행하는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셨고, 그 육으로 행하는 일상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바울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12:1).

셋째, 하나님은 제물보다 헌제자의 삶을 중시하십니다. 고대근동의 신들은 자신에게 예배하는 자들의 일상의 삶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주목했던 것은 예배자들이 들고 오는 제물의 질과 양이었습니다. 헌제자의 삶보다 제물을 중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물보다 헌제자의 삶을 중시하십니다.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들고 온다 하더라도 일상의 삶에서의 하나님과의 동행이 없다면,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아내는 순종의 삶이 부재하다면 그들의 예배는 열납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들고 온 제물 이전에 그들의 삶을 주목하셨습니다. 아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물 이전에 그 제물을 들고 온 존재가 먼저 열납되고, 열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 하나님은 이 땅의 밑바닥 인생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대부분의 신들은 이 땅의 왕과 같은 권력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왕과 같은 권력자에게 행한 것이 곧 신에게 행하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소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고아와 과부와 같은 존재들에게 행한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진정 믿는 자라면 이 땅의 밑바닥 인생들을 하나님을 대하듯이 존귀히 대해야 합니다. 힘있는 자에게는 굴종적이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군림하고자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일반적인 질서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러한 세상의 질서에 종속되거나 동화되지 않아야 합니다. 연약한 자를 존귀히 여기고 그의 삶을 돌보고자 정성을 다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우리 하나님은 아내신이 없으십니다. 고대근동의 대부분의 주신들은 아내신이 있었습니다. 그 아내신과의 결합을 통해 다산과 풍요, 번영 등을 제공해주는 것이 주신의 주된 역할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음란한 제의들이 동반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내신이 없으십니다. 성경 어디에도 음란한 제의를 용납하거나 허용되는 구절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백성을 자신의 아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은 언약백성의 남편이라 말씀하십니다. 신과 인간을 부부관계로 규정하시면서 언약백성들에게 일편단심의 충성과 사랑, 순결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이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보다 연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하듯 존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언약적 신실함, 순결함, 거룩함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그 요청에 걸맞은 신실한 걸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됨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글쓴이 양진일은 가향공동체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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