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목사로 잘 살아가고픈 꿈이 있습니다
나에겐 목사로 잘 살아가고픈 꿈이 있습니다
  • 이진영
  • 승인 2017.12.31 0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진영 목사의 복빛교회 단상
2013년 목사 안수 기념 사진 이진영
2013년 목사 안수 기념 사진 ⓒ이진영

 

어린 시절 제게 세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꿈을 이루기도 벅찬데 꼭 그 세 가지 꿈을 반드시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 첫번째는 시인이 되는 것이었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또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 세 가지 꿈을 어느 정도 이루었고 또 이루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뜬금없지만 이 꿈은 중학생 시절 갑작스레 찾아온 사춘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 시기를 참 어렵게도 보냈습니다. 아예 대놓고 반항을 하고 사고를 치고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요동의 정점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지독한 2에 걸렸던 건가봐요. 당시에 아버님께선 어두컴컴한 구식 건물 지하에 개척교회를 세워 목회를 하셨구요. 손재주가 좋아 베니다 합판으로 칸막이를 설치하고 보일러까지 설치해 교회와 사택을 지었습니다. 거기서 꼬박 3년을 살았더랬죠. 워낙 교인이 없어서 아버님께서 예전에 전도사로 사역하시던 교회 중고등부에 출석하게 허락해 주셨었는데 그 교회에서 제일 이뻤던 누나에게 종종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에 꼭 시를 한 편씩 써 넣곤 했죠. 시를 쓰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꼭 시인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후에 군에 복무시절 창조문예라는 초라한 문예지에 오래도록 다듬던 습작 몇 편을 내 등단이라는 걸 하고 시인이 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어린 시절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시를 쓰지를 못해서 굳이 시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기가 민망합니다.

또 철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엄밀하게는 철학을 공부하고 신과 인생과 우주의 비밀을 파고드는 깊은 지혜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국문학과 국어학을 공부했지만 제 손에는 늘 철학자들의 책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 1855),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이름만 들어도 멋진 이들의 책을 늘 끼고 다녔습니다. 나도 이렇게 생에 대하여 진지한 사람이라고 과시하고 다녔습니다. 제대로 이해 할 수도 없었던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었는데 지금도 이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기야 지금 제게 전문적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만 생에가 다 가도록 신과 사람과 세계를 모두 소중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나름의 철학적인 사람이 되고는 싶습니다. 딱 그만큼만 철학자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99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실연을 당해서 마음의 병이 깊고 허리 디스크가 도져 몸이 망가진 후엔 결국 휴학을 하고 말았습니다. 학원 강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군에 입대해서 5년간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비교적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지독한 방황이 다시 찾아왔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제가 군에 있었기 때문에 그 방황의 진폭이 제한적이고 복구가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대를 한 후에 미국 LA에 있는 Talbot 신학교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동부 필라델피아에 있는 Westminster로 학교를 옮겨서 2010년에 목회학 과정을 졸업했습니다. 그러고도 목사되기가 마뜩하지 않아서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르심의 음성이 확실해진 2013년이 되어서야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가 되려고 나선 이후로 딱 14년 만에 목사가 된 셈이지요. 그리고 여태 목사로 살아가는 중입니다.

하여간 지금의 저는 이 세 가지 꿈을 꽤나 실하게 이루었고,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은 뭐로 보나 목사로서 사는 일이네요. 사실 매일이 괴롭고 부끄럽고 힘겹습니다. 목사가 목사인 것은 목양을 하기 때문인데, 이제 시인으로 사는 것도,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가 되는 것도 죄다 좋은 목사로 살아가는 일에 기대어 있는 것이겠다 싶습니다. 그저 천국갈 때까지 목사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복음의 빛 교회 식구들은 제 꿈이 현실이 되게 해주는 꿈 공장의 동반자들이시군요. 올 한해도 이 꿈 농사가 제대로 지어진 건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이야 말로 제 꿈입니다.

 

글쓴이 이진영 목사는 미국 동부 메릴랜드의 복음의빛교회 담임목사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