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 시작해 계속 울었다
울기 시작해 계속 울었다
  • 강현아
  • 승인 2017.12.29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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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1987 포스터 ⓒ1987

 

이 영화는 도무지 관찰자적인 위치에서 볼 수 없었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얼어붙은 강물 속에 뛰어들어 오열하는 장면부터 울기 시작해 계속 울었다. 낡은 필름의 질감도, 탁월한 연출도, 극적인 요소도 모두 좋았지만 치고 빠지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배우는 안 보이고 배역만 보여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종교의 역할과 제도로서의 교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제 더 이상 종교 내부의 일치된 이념이나 신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신앙서적을 열심히 읽고 찬송가를 잘 부르는 고문기술자가 있는 반면, 재야의 민주화 인사들을 숨겨주는 향린교회나 사찰들도 있고, 정의구현사제단과 같은 사회의 영적 리더들도 있고.. 그렇다면 아무리 떠들어도 남는 것은 종교적 신조가 아니라 정치적 신념인가. 아니면 국가, 가족주의? 개인, 독고다이(獨固多異)? 애국을 수호하는 극우 파시스트들에게 종교는 무엇일까. 1987로부터 30년이 지난 2017년의 한국의 개신교는 확실히 퇴보했다. 내 주변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저런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 생각나 갑자기 열불이 터졌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질문은, 결국 내게는 어떻게 믿어야 할까?’로 귀결되었다.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의 6월 항쟁에서의 문익환 목사님 모습이 계속 잊히지 않는다.

얼마 전 유튜브에 있는 김근주 목사의 강의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며 양아치 집단에 대해 한 이야기가 줄곧 생각났다. '양아치는 조직을 위해 목숨까지 헌신하지만, 조직 바깥의 사람에겐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다. 자기 식구한테는 간이라도 빼주지만 선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겐 안면을 몰수해 버리는 게 양아치 생태계다.’ 대형교회나 권력을 세습하는 특정 종교 지도자들이 양아치와 다를 바 없음을 언급하시던 대목이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도 물고 뜯고 치고 박는, 양아치보다 못한 자들 같았다.

이 영화는 지난 몇 년 간 보아 온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진일보했다. 아니면 장준환 감독 개인의 특별한 재능과 신념 때문이거나. 그렇지만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다. 6월 항쟁이 그렇듯, 광장에 선 사람 수가 그랬듯.. 아마 이 영화는 두 번 봐도 같은 장면에서 울지 싶다. 다음 주에 병원 검진 일로 서울 오시는 엄마와 꼭 극장 다시 가서 같이 보고 싶은 영화. 가방 끈이 짧은 우리 엄마를 위해 이런 영화는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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