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과 촛불이 만나다
최루탄과 촛불이 만나다
  • 최은
  • 승인 2017.12.28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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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017)
'1987'(2017)
'1987'(2017) 영화 포스터 ⓒ1987

 

30년 전 일이다. 꽉 찬 한 세대가 지났다. 실은, 겨우 한 세대가 지났을 뿐이다. 19871월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월 민주항쟁과 호헌철폐,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혁명의 시기를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누구의 공이 가장 컸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 역사적인 현장에서 혁명의 제물이 된 고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의미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리 없다. 그 밖의 공을 혹시 헤아려 볼 수 있을까? 윗선의 뜻을 거슬러 시신보존 명령을 내리고 부검을 지시한 최 검사(하정우), 대공 공안처장(김윤석)의 접견 내용을 폭로한 보안계장과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킨 교도관(유해진), 보도지침을 파기한 신문사 편집장(고창석),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이희준), 그에게 정보를 흘린 의사와 검사들, 기록 문서를 전달한 연희(김태리), 좌익인사 김정남(설경구)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승려와 사제와 목사들, 셔터를 내려 시위대에서 연희 커플을 숨겨주고 타이거운동화 값을 깎아 준 시장의 이름 없는 아주머니……

꼬리자르기는 꼬리가 한 두 개 일 때야 가능하다는 것을 연루된 수많은 꼬리'들의 깨알 같은 움직임들이 새삼 알려 주었다. 주연급 까메오들이 대거 등장하는 배역 설정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하고도 옳았다. 그들은 혁명을 위해서는 똘끼도 제대로 된 명예와 자존심도 신념도, 하지만 바로 그 신념을 거스르는 용기도 배신도, 더러는 '첫눈에 반함이나 애정과 연민 까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보여 준다. 그러니까, 지구는(나라는) ‘이렇게' 지키는 거라고.

같은 이유로, 영화 말미에 김태리가 자신의 이름을 딴 가게(연희 슈퍼)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 시퀀스를 시작한 것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세상 모든 심난함과 한숨을 담아, 그는 몇 다발의 양초를 진열대에 정리하고 있었다. 30년 전 최루탄과 오늘의 촛불은 그렇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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