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도 크리스마스의 소망은 여전하다
사막에서도 크리스마스의 소망은 여전하다
  • 엄경희
  • 승인 2017.12.28 0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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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서 맞는 다섯 번째 크리스마스
엄경희
ⓒ엄경희

 

사우디에서 맞는 다섯 번째 크리스마스 날, 윤하가 마당에서 놀다 넘어져 턱 밑을 세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사고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사우디는 공휴일이 아니라 남편은 평일처럼 출근을 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일어나니 며칠 피부가 좋아졌던 성하의 피부가 간밤 다시 악화 되면서 아이가 밤새 잠도 못 자고 밤을 꼴딱 지새운 채 퀭한 얼굴로 내 눈 한번 마주치더니 바로 자러 올라가서 하루 종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남편도 성하도 없어 썰렁하고 허전했지만 힘을 모아 수하, 준하, 슬하와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차 오후에 윤하에게 이 큰 사고가 터진 것이다. 흉이 지지 않을까 성형외과를 찾아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봤지만 헛수고, 결국 응급실에서 세 바늘을 꿰매는 것으로 치료를 수습해야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세돌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옆에 앉아 쉬지 않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며 아이를 잡아 주었다. 놀랍게도 윤하는 살짝 울음 몇 번 터뜨리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 채 믿기 어려울 만큼 대견하게 생애 첫 수술을 잘 감당했다.

집에 오자마자 윤하는 힘들었는지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고 나 역시 진이 빠져 한참을 쉬었다. 그래도 오늘은 일 년에 하루뿐인 성탄절. 성탄송이 너무 부르고 싶어 혼자 찬송가에 나온 성탄송을 차례대로 모두 부르도록 성탄예배 분위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얘들아, 예수님은 온세상이 가장 깜깜하고 어두울 때 빛으로 오셨잖아.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이 아마 이곳 사우디 같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세상의 크리스마스는 알록달록 빛으로 화려하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인정되지 않는 곳, 크리스마스도 인정하지 않는 이곳 사우디는 어찌 보면 예수님이 오셨던 그 깜깜하고 적막하고 쓸쓸하고 암울한 밤이랑 가장 닮았는지도 몰라.”

이것이 올해 나의 성탄 메시지였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국경에서 빼앗기는 기분 좋지 않은 경험에도 굴하지 않고 트리를 할 만한 살아있는 나무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나름 집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왠지 이곳의 적막하고 깜깜한 크리스마스를 있는 그대로 한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도, 예배 외 특별한 크리스마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나마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 전에 준하가 직접 고르고 몇 달 정성껏 돌봐 온 꼬마 나무에 크리스마스트리를 한 게 전부였고 그 덕에 산타 할아버지 선물도 조촐하지만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준하가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어마어마한 어둠이었나 보다. 아무 빛도 준비하지 못한 우리 가족은 성탄절날 사막의 어둠과 적막에 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모래 폭풍으로 모래에 잠기듯 어둠에 잠겼다. 나는 성탄 예배를 드리다 가족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수술 받고 일찍 잠들어 버린 윤하 옆에서 그렇게 성탄절을 종료했다. 생애 최악의 가장 어두운 성탄절로 기록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어둔 밤하늘에 별이 있었잖아. 하늘에 천사 합창단도 있었고. 여기는 별이 어디 있어?”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그때와 가장 비슷한 곳에서 우리가 성탄절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나의 성탄 메시지에 던진 준하의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였다. 정말 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성탄절 다음날, 마음을 일으켜 다시 일상을 살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윤하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밥도 잘 먹고 잘 논다. 흉이 심하게 남으면 어쩌나 염려만 빼면 예전과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전날 밤 12시에 잠이 깬 성하의 얼굴에는 며칠 누렸던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가려움과 싸우느라 다른 여유도 사라진 얼굴이었다. 간만에 뽀얗던 얼굴에 붉은빛 기운이 퍼지고 있는 게 보인다. 며칠 또 지옥 같은 힘든 시간을 앞둔 성하는 짜증과 자포자기와 싸울 여력이 없는 눈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일상을 흔들지 못하게 하리라 다잡은 나의 결심은 그대로였다. 성하에게 아무 일 없는 듯 농담을 건네며 또 한바탕 잔치를 치러 보자 너스레를 떨어본다. 물론 녀석에게 웃음은 얻어내지 못했지만 절망에게 지지는 않았다.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일을 한다. 윤하 상처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쓰며 약을 먹이고 다섯 아이들을 돌아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돌보고 홈스쿨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 아이들도 활기차게 하루를 살고 남편은 전쟁터 같은 일터로 씩씩하게 나아갔다.

사우디를 떠나고 싶다는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불현듯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낙심에게 빼앗기지 않고 단 하루지만 씩씩하게 늘 살던 일상을 지켜낸 우리 가정 안에 준하가 물어본 그 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 사막의 거대하고 짙은 어둠에 눌려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우리 가정 안에 그 별은 결코 위축되거나 위협받지 않은 채 빛을 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혹여 내년에도 여섯 번째 성탄절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 산타 할아버지가 깜깜한 사막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반짝반짝 크리스마스트리도 환하게 꾸미고 바이올린 연습을 열심히 해서 크리스마스 음악회도 열고 사람들 초대해서 파티도 하는 등 있는 요란은 다 떨어봐야겠다.

내 생애 가장 깜깜했던 올해 크리스마스는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빛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가장 강렬하게 깨달은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이 빛이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구나, 그리스도가 정말 세상의 소망이고 나와 우리 가정의 소망이구나, 크리스마스의 원래 메시지가 올해보다 더 강력하게 전해진 적은 없었지 싶다. 어둠이 강력하고 짙은 만큼 우리 가정 안에 빛을 향한 소망도 강렬해지리라. 그 소망이 강렬한 만큼 그리스도의 빛은 더 강하게 임하리라. 그렇기에 어떤 곳에서도 성탄절은 소망이다. 기쁨이다. 빛이다. 사막에서도 크리스마스의 소망은 여전하다. 아니 더 강력하다. 더 생생하다. 사망을 이긴 그리스도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 성하 오빠 웃기는 사람에게 엄마가 선물 건다!!”

하루 종일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없는 성하를 웃겨볼 요량으로 깜짝 웃기기 대회를 열었다. 아이들 눈이 반짝인다. 슬하부터 돌아가며 나름 용을 쓴다. 슬쩍 웃음이 새도 시원하게 터지지 않던 성하의 웃음이 준하의 배춤에서 드디어 터졌다. 준하 승리!를 외치던 순간 퇴근한 아빠, 와이셔츠 차림으로 춤을 추니 으허허웃음소리까지 폭발이다. 온가족이 웃음바다에서 허우적이다. ‘한 번 더!’를 외치자 아빠는 런닝 팬티 차림으로 발레를 추었다. 아이들도 나도 웃느라 정신이 없다. 성하도 웃는다. 나는 너무 웃어 눈물에 콧물까지 났다. 순간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날 하늘에 울려 퍼진 천사들의 합창 소리가 겹쳐 지나갔다. 비록 하루가 지났지만 우리 가족은 다시 성탄 예배를 드렸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 잠자는 동안에
평화의 왕이 세상에 탄생하셨도다.
저 새벽 별이 홀로 그 일을 아는 듯
밤새껏 귀한 그 일을 말없이 지켰네.”

성하 없이 조촐하게 드린 우리의 성탄예배. 온 세상이 아무 것도 모르고 조용하기만 할 때 홀로 그 탄생을 지켜 본 새벽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이 깜깜하고 적막한 사막에서 휘덮였던 어둠을 겨우 털어내고 작고 초라하지만 반짝 크리스마스 빛을 겨우 깜빡일 수 있었다.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기에 소망 없는 크리스마스는 있을 수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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