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그대 오실 길이 내 갈 길
[김영준] 그대 오실 길이 내 갈 길
  • 김영준
  • 승인 2017.12.2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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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목사의 설교 노트 - 왕상 16:29~18:1;눅 1:17
피터 브뤼겔, St John the Baptist Preaching, 1601
피터 브뤼겔, St John the Baptist Preaching, 1601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아버지께서 전남 여수로 발령이 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보통 2주에 하루 정도 광주에 다녀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오실 때마다 저는 아버지 오시는 길목에 나가있었습니다. 시계를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은 기약 없는 것이었는데도, 아버지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기뻐해주시고, 저를 알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저를 알아주셨습니다. 딱히 한 게 없는데 아버지는 저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런 게 은혜지 싶습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벗님이 되겠다 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15:15)” 주님이 벗님 되시는 것은 우리를 주님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알아주시는 것입니다. 딱히 한 일도 없는데 감히 사람이 하나님의 벗이 된다는 건 가당찮은 일입니다. 이런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일겁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알아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딱히 잘하는 것이 없어도 예수님이 우리를 기뻐해주시고 알아주십니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논어의 두 번째 문장입니다. 공자는 뭇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것보다, 멀리서 찾아오는 벗이 있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칩니다. 논어의 세 번째 문장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세상 사람들은 군자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군자는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뭇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벗이 한 명 있어서, 그가 멀리서 온다면, 그것이 기쁨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혹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십니다.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찾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벗님 되셔서 나를 찾아오십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악한 왕 아합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이래 균등하게 분배되었던 토지 제도를 아합이 무너뜨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 예언한 사람이 엘리야이기 때문입니다(왕상 16:34;17:1;21:16).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백성들에게도 기근이 닥칩니다(왕상 22:2)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지배자와 백성들과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도 인정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누구의 지지도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사람들이 선지자 엘리야를 알아주지 않습니다(人不知). 자기 자신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맞짱을 뜹니다(왕상 18:19). 하나님의 선지자는 한 명,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는 850명입니다. 정치지도자 아합의 적 엘리야는 또한 모든 종교지도자들의 적입니다. 백성들도 엘리야를 따르지 않습니다(왕상18:21). 어쩌면 엘리야 자신도 엘리야의 적입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엘리야를 벗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목에 마중 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한입니다.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1:23)” 요한의 소명(calling)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와 요한과 엘리야를 동류로 보았습니다.(8:28)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세례요한에게 있다고 여겼고, 예수의 심령과 능력도 엘리야와 유사하다고 여겼겠습니다.

벗님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의 심령은 균등한 토지 분배 시스템을 파괴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요, 또 엘리야의 심령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며 홀로 남은 줄 알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왕상 18:4;19:14). 엘리야의 능력은 토지도 없고 남편도 없는 가난한 과부를 구제하는 것입니다(왕상 17:16). 또 엘리야의 능력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 850명 앞에서도 쫄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왕상 18:18).

아이들이 성탄을 기다리며 선물을 기대합니다. 부모 입장에선 불필요한 선물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도 불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선물이 있습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입니다. 우리는 벗님이신 예수님 맞이하려 마중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마중 나가는 것은 예수님이 오실 길로 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예수님 오실 길이 우리가 갈 길입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가겠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예수님이 알아주십니다. 때로 나는 나 자신에게까지 버림 받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벗님 되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글쓴이 김영준목사는, 김포에서 발달장애인, 이주여성들이 함께하는 카페 ‘민들레와 달팽이’를 운영하는, 민들레교회의 담임목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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