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 권영진
  • 승인 2017.11.0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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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의 정언향 칼럼 
El Greco(1541–1614), Mount Sinai
El Greco(1541–1614), Mount Sinai

정치적 입장에서 볼 때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에 비해 핸디캡이 늘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성'에 관한 것입니다. 진보적 입장을 가진 정치인들은 대부분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입장에 주로 섭니다. 반면에 보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은 현실의 상황을 고착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 입장이 충돌할 때는 진보주의자는 늘 보수주의자들의 정경유착이나 부패를 주로 지적하며 '사회의 정의'의 회복과 바람직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보주의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진보주의자는 적어도 보수주의자들보다는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깨끗하고 부패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핸디캡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패의 척결을 외치는 사람이 개혁의 대상보다도 못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고 오히려 정적들의 공격에 역공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보적 입장, 개혁적 입장에 있는 이들이 늘 소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인데 크게 흠잡힐 일이 없도록 자신이 주장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사회는 그러한 소수의 지도자들와 뜻있는 사람들로인해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을 때 그래도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의 정당성을 부르짖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사람들이 언젠가는 깨닫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이러한 인간사회의 속성은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 역시 인간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쓰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개혁적인 입장에 섰던 사람들을 후대에서는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당대의 상황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하나님의 본래 말씀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했던 이들이 바로 선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야웨종교,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를 믿는 기반의 신앙체계를 가진 이스라엘 종교는 모세가 대표가 되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후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십계명을 필두로 하는 율법의 뜻과 정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스라엘의 율법의 핵심적 내용이 담겨있는 오경은 당시 주변의 근동국가들의 법전과 비교해보면 소수의 기득권(왕과 귀족)만이 아닌 모든 공동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구성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율법의 내용대로만 산다면 그 공동체는 매우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의 왕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백성들과 나누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는데 이유야 당연하게도 인간의 탐욕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은 차츰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갔고 왕과 귀족들은 당시 가장 영향력있었던 종교지도자들(제사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하나님의 법마저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적용하여 점차 백성들은 기득권층의 노예와도 같은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들의 잘못과 탐욕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정신을 회복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한 사람들이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왕정이 시작되고 나서 이 선지자들의 역사도 함께 시작됩니다. 왕정 초기의 전기 예언자들(엘리야, 엘리사 등)과 왕정 후반부와 포로기 시대의 후기 예언자들(이사야, 호세아, 아모스 등)은 모두 이스라엘의 각각 다른 시대적 상황마다 일어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분야 모두에서 이스라엘의 기득권층의 타락과 부패를 지적하고 본래 이스라엘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당시 핍박받던 하층민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주었고 그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또한 필연적으로 이들은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과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선지자들을 가만 내버려두면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자신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기득권층(보수진영)은 그들을 모함하고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심지어는 교묘한 방법으로 잡아다가 고문하거나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기록되고 문서화되어 후대에까지 교훈을 주는 정경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선지자들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한가지 특징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선지자는 살아 생전에 존경을 받았던 일이 드물었다는 것입니다. 초기 선지자인 엘리야와 엘리사를 제외하고 - 그들은 강력한 권능을 행했던 매우 특별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 왕정 후기, 즉 주전 8세기 이후의 선지자들은 거의 대부분 살아 생전 고통과 고난을 심하게 당했습니다. 그리고 조소와 조롱 속에서 살다가 쓸쓸히 죽어간 경우가 많았지요.

그러나 그들의 사후와 그들의 예언이 이루어진 이후의 시대에서 그들의 주장은 새롭게 조명되었고 비로소 사람들은 그들의 외침이 옳은 것이었고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뒤늦게라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주전 6세기 이후, 포로기 시대의 문서들과 성경의 내용들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삶을 통해 분명한 하나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선지자들의 삶은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것이었고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욕심과 이기적인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수록 선지자들의 주장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옛말에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세상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유별나게 튀지말고 그냥 둥글게 잘 어룰려 사는 것이 좋다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말들은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사는 것은 무척 힘들고 어려운 삶이 될 것이라는 역설적 경고가 담긴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경 속에서, 그리고 지금의 세상에서도 이 변하지 않는 원칙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잘 알고 있지만 그 분명한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득권층을 비롯한 대다수의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온갖 공격과 비난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 스스로가 그 말을 입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실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즉 원칙과 정의를 외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분명하고도 뚜렷한 길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길이지만 누구도 선뜻 발을 내딛기 어려운 길입니다. 그리고 과거 구약의 암흑기에서 선지자들이 외로이 걸었던 그 길은 이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말입니다.

저는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을 "믿습니다" 말 한마디면 다 될 것처럼 말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미워합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짜 선지자고 삯군 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습니다"라고 말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본인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그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과 복을 주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결국 구약 시대의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하나님을 팔아 먹었던 종교지도자들과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도로 사는 것 -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 은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성경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고 또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쉬운 것이면 정말 좋겠지만, 저는 여러분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위대했던 신앙의 선진들이 동일하게 고백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신앙은 쉽고 편한 것으로 인스턴트화 되어 갑니다. 그렇지만 진짜 신앙의 길은 결코 쉬운 것도 편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시대에 그 길을 걸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모난 정"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선지자들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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