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개조 논제’는 비텐베르크 교회에 게시되지 않았다
'95개조 논제’는 비텐베르크 교회에 게시되지 않았다
  • 박흥식
  • 승인 2017.11.0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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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종교개혁 500주년 공식사이트 화면 갈무리
독일의 종교개혁 500주년 공식사이트 화면 갈무리

 

루터(Martin Luther)가 면벌부(면죄부)를 비판한 일명 ‘95개조 논제15171031일 비텐베르크의 성교회(the Schlosskirche : Castle Church)에 게시되지 않았다. 이를 지지하는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 확인된 사실은 루터가 1031일 시 교회에서 면벌부에 대해 설교했고, 브란덴부르크 주교와 마인츠 대주교에게 논제를 동봉한 서신을 보내 면벌부 지침의 철회와 면벌부 오남용을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루터는 그가 남긴 그의 모든 글에서 논제를 게시했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한다. 그는 일관되게 그의 논제가 공개되지 않기를 원했다고 피력했다. 독일의 역사학자 에르빈 이절로(Erwin Iserloh, 1915-96)1961년의 발표와 그 다음 해에 출판된 그의 책에서 독일의 종교개혁가 멜란히톤(Philip Melanchthon, 1497-1560)의 주장을 비롯해 모든 관련된 근거들을 샅샅이 검토해 논제게시의 가능성을 일축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5185월과 11월 교황 및 작센 선제후에게 보낸 루터의 서신들을 비롯하여 당시의 모든 기록들이 그 검토 대상이었다.

그 후 장기간에 걸친 논쟁이 전개되었으나 이절로의 글을 반박할 만한 어떤 근거 있는 자료와 논리가 제시되지 못했다. 개신교측 일부 교회사학자들은 현재까지도 정황적 근거를 들어 논제게시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확실한 자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루터가 글로 일관되게 당시 상황을 거짓말을 했어야만 성립하는 논리이다. 그러나 루터의 동료들에게 보낸 여러 서신들은 그와 충돌한다.

2006년 루터의 비서였던 게오르그 뢰러(George Rörer, 1492-1557)의 메모가 재조명되어 다시 이 주제가 부각되었다. 그러나 뢰러의 글은 튀빙엔( Tübingen)의 교회사학자 폴커 레핀(Volker Leppin, 50)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비판적 분석에 의해 증거능력이 반박되었다. 독일 루터 관련 유적지들의 모든 공식전시물에 논제게시를 긍정하는 어떤 확실한 언급도 없다. 2016년 필자는 관련 지역을 두 차례 답사했고, 직접 확인한 바 있다. 물론 보지 못한 자료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독일의 종교개혁 500주년 공식사이트에서도 논제게시 사실을 증명해 줄 결정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가설과 왜곡된 사실은 종교개혁의 성격을 오해하도록 유도할 뿐 아니라, 루터를 영웅화하는 신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개혁 기념일이면 으레 개신교 목사들이 이 사실을 강단에서 말하지만, 그 근거를 살펴본 분들은 없을 것이다. 교회사학자들도 대부분 루터와 관련하여 은혜가 되는 부분만 부각시키고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루터가 세속사학자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지 않는다.

그러나 관련 1차 자료를 다루는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논제게시에 대한 사실과 루터의 부정적 유산을 책과 논문으로 밝혀왔다. 국내에도 관련 사실을 언급한 책들이 적잖게 있다. 이제라도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크다.


루터는 민중을 선동할 의도도 종교개혁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다. 그가 종교개혁운동을 점화시킨 공로는 크지만, 그 시대가 열렬히 요청했기에 루터는 의도하지 않은 채 종교개혁의 장으로 소환되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은 일차적으로 그 시대 혹은 당대 인문주의자들과 평민들이 당대 교회의 적폐에 저항했던 사건이다. 루터의 역할이 작지 않았으나, 루터는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어 평가되고 있다. 신화와 전설을 걷어내고 역사적 루터를 마주해야할 때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은 교회의 성찰을 위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는 구교나 신교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글쓴이 박흥식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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