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인가 은혜인가? - 영적 허구에 관하여
기적인가 은혜인가? - 영적 허구에 관하여
  • 이택환
  • 승인 2017.12.15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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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을 강조한 글일수록 비판적 읽기가 필수다
안수현 , 이기섭, 그 청년 바보 의사, 아름다운사람들, 2009년
안수현 , 이기섭, 그 청년 바보 의사, 아름다운사람들, 2009년

나이 40 되던 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석(?)부목사직을 사임했다. 담임목사님, 장로님 등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말렸지만 주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길이 있을 것으로 믿고 무작정 기도했다.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현직 한의사이며, 신학교 동기인 목사님이 찾아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선교단체 학사사역부 간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주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그 때부터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선교단체 간사 일을 11년 동안 맡게 되었다. 기적인가 은혜인가?

10년 전 쯤 모 병원 전공의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한 적이 있다. 그 모임을 섬기던 대표 자매가 결혼한 지 5년 넘도록 아이가 없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모임에서도 집에 와서도 자매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그해 연말, 그 자매로부터 아이를 갖게 되어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다. 사실 이런 일들은 몇 번 더 있었다. 기적인가 은혜인가?

40대 말에 접어든 전임간사 7년차, 전임사역을 협동사역으로 바꾸고 교회개척을 하기로 하고 기도했다. 돈 없고, 건물도 없고, 모일 사람조차 없는 내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출석할 교회를 찾던 모 간사(목사)님과 의기투합,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나에게 활달하고 적극적인 그 간사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무엇보다 간사님이 아는 피아노학원을 무료 예배처소로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무일푼 개척은 가당치 않는 일이었다. 기적인가 은혜인가?

작년 초, 교회에 유아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7-8명 아이들을 담당할 교육전도사가 필요했다. 기도하고 신대원 모집공고를 냈다 작은 교회라 사례 적음. 큰 교회처럼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없어 죄송함. 개척교회 어린이 사역에 관심 있는 분 연락 바람. 50대 말 남자분이 이력서를 냈지만 차마 청빙할 수 없었다. 20대 여학생은 문의만 하고 연락이 없다. 그게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소망교회야 말로 자신이 기도하던 바로 그 교회라며 꼭 사역할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현재 우리교회 교육전도사 신** 전도사다. 지금 그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 없고, 그를 존경하지 않는 교우가 없다. 기적인가 은혜인가?

이런 일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얼마 전에도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있었지만 생략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들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은혜다. 100%! 물론 나도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하나님 앞에 특별한 기적의 사람인 양, 우리 교회 무슨 대단한 기적의 교회인 양, 간증할 수 있다. 약간의 미사여구와 굴곡을 첨가해서 간증하면 기적이 일상이 되는 교회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사실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기도했음에도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더 많다. 기도해도 전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아픔들이 거의 태반이다.

 

그 중에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소위 성공 케이스만 그럴 듯하게 과장하여 기적으로 간증한다면 정당한 일이 아니다. 은혜가 기적이 되려면 검증이 필요하다. 기도한 내용 중에 기적처럼 이루어진 일들과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다 조사해서 이 목사와 이 교회가 정말 기적을 만드는 목사요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인지를 검증해야 한다. 의사도 자격증이 있고, 상담사도 자격증이 있다. 이미 검증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아무런 검증 없이 기적의 목회자니 예언의 사역자니 하는 사람들이 특수한 사례들을 부풀려 소개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 폐해와 피해자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은혜는 은혜로 족하다. 이루어져도 은혜요 안 이루어져도 은혜다. 이루어진 몇 가지 은혜를 마치 기적인양 포장하는 것은 영적 허구(S/F, Spiritual Fiction).

 

위의 글은 2014128일 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그럴 듯하게 가다듬어 책이라도 냈다면 나도 <기적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을까? 20081, 나와 몇 몇 사람들은 우리의 친구, 선후배였던 고 안수현의 <그 청년 바보의사>를 출간하기로 했다.

그 때, 모 유명 기독교 출판사로부터 안수현의 글은 그대로 내면 잘 팔리지 않는다. -라이팅(Re-writing)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았다. 원글을 가감첨삭하여 보다 극적인 글로 개작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출판은 보류되었고, 1년 뒤 한 비기독교 출판사를 통해, 안수현의 원글 그대로를 실은 <그 청년 바보의사>를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읽는 글들은 종종 출판사의 전문 작가들에 의해, 혹은 그 전에 글쓴이 자신을 통해 허구적인 요소가 가감첨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점을 유념하고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원래부터 소설을 표방한 글이라면 아무 상관없다. 그러나 논픽션을 강조한 글일수록 비판적 읽기가 필수다!

 

글쓴이 이택환 목사는 그소망교회 담임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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