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느끼는 경이감
일상 속에서 느끼는 경이감
  • 김영웅
  • 승인 2017.12.15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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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창조는 경이감의 바탕이 된다. (미켈란젤로, 로마 바티칸 시스틴성당벽화)
인간창조는 경이감의 바탕이 된다. (미켈란젤로, 로마 바티칸 시스틴성당벽화)

 

문명은 발달했으나 우린 경이감을 상실했다. 우리는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비 온 뒤 무지개를 마주할 때 숨을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않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흙과 돌로 구성되어져 있고, 물은 하나의 산소 분자와 두 개의 수소 분자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차라리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우리들의 선조 시대 때는, 천둥 번개가 칠 때나 수십 일 동안 장마가 지속될 때 두려워서라도 하나님을 더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우린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 심지어 우린 며칠 뒤의 기상도 예측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 예전에 하나님을 찾던 것들은 단지 우리들의 무지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과학은 자연 속에서 점점 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갔고, 급기야 교회 안에 하나님을 가둬 버렸다.

과연 신앙은 무지의 산물인가? 과학은 신앙을 점령한 것인가? 물이 H2O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물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둥번개가 치는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그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또한 과거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 모든 것 안에 거하시고 관장하신다. 하나님이 그것들의 아버지요,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범신론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만 갇혀 있거나, 개인의 마음 속에만 거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 같은 과학자들은 생명 현상의 숨겨진 법칙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자리에 있다. 누구나 알 수 있었지만, 아무도 몰랐던 그 비밀스럽고 조심스러운 현상을 조그만 생쥐의 뼈 안에 있는 어떤 세포를 통해서도, 그 세포 안에 존재하는 특정한 몇몇 단백질들을 통해서도, 그리고 그 단백질을 구성하는 작디작은 몇몇 분자들을 통해서도 그 누구보다도 먼저 접하게 된다. 그러기에 생물학은 매력적인 학문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생물학자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생물학자의 차이점을 누군가 물었다. 많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한 단어, 바로 경이감으로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믿는 생물학자나 믿지 않는 생물학자나 똑같이 신비로운 생명현상을 발견하거나 그것의 법칙을 알아내어 세상에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발표한다. , 프로세스는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며 어떤 발견을 했을 때, 증명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반응이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경이감과 함께 하나님이 하신 방법에 숨을 죽인다. 누군가는 똑같은 발견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미래 성공 대박과 직결되는 것으로만 인지하여 경탄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생물학자인 나는 그 현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 차이는 가치관이다. 세계관이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믿음은 반응을 다르게 한다. 그리고 그 반응은 외부에 보여질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그 때 그 사람의 몸을 통해 드러난 반응 그 이면에서 있던 성령이, 내 안의 예수가, 드러나고 보여지는 것이다. 나는 감히 이 순간을 전도와 선교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다. 생물학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이 유한한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신다. 모든 자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 모든 인간의 하나님이 되시는 그분은 언제나 놀라운 방법으로 일하신다. 구원은 인간만 죄악이라는 난파선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게 아니다. 창조세계가 모두 구속되는 것이다. 과학과 신학을 비롯하여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임재를 제한할 수는 없다. 하나님에게 규칙을 정해 줄 수도 없다. 우리에겐 그런 권한이 애초부터 부여되지 않았다. 우린 피조물이다. 우린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재발견해야 한다. 바로 교회 안만이 아닌, 자연 속에서도, 일상의 반복되는 패턴 가운데서도,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말이다.

 

글쓴이 김영웅박사는, 하나님나라에 뿌리를 두고, 문학/철학/신학 분야에서 읽고/쓰고/묵상하고/나누고/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분자생물학/마우스유전학을 기반으로 혈액암을 연구하는 가난한 선비/과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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