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산다'라고 외쳐야 할까?
언제까지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산다'라고 외쳐야 할까?
  • 박재익
  • 승인 2017.12.12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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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 리서치 센터(2015.03) ⓒ Pew Research Center
퓨 리서치 센터(2015.03) ⓒ Pew Research Center

 

기독교 설교나 강의에서 '기독교 국가들(?) 또는 기독교를 수용한 나라들이 잘산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 논리는 '부자 나라 논증'이라고도 불리는데, 무신론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이미 그들에게 반박되기도 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들으면 맞는 이야기 같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우월함을 변증하기 위해 역사와 사회에 대해 왜곡 수준으로 단순화 시킨 관점을 기독교 내외부에 전파하기에 이 논증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 나라 논증'을 듣고 떠올리게 되는 잘사는 나라들, 선진국은 보통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일 것이다. 그들은 언제부터 부강해졌고 어떻게 부를 쌓았을까?

첫째로, 서유럽에는 과거 식민지배와 제국주의로 유명한 국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 나라들의 부의 근원은 근, 현대 들어 건설한 방대한 식민지일 것이다. 이들은 식민지를 수탈하고 착취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미국의 경우 원주민들을 학살하며 그들의 영토를 확장해 나갔고 2차 대전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지금과 같은 초강대국이 되었다. 현재 부유하고 상대적으로 기독교의 비율이 높다 해도 이 나라들이 부강해진 방법이 예수의 정신과 가르침에 부합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이들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데 과연 기독교가 기여를 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들 국가의 부국강병은 아이러니 하게도 유럽이 정교분리가 진행되며 종교의 억압을 벗어났을 때였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상에 기반한 르네상스, 산업혁명에서 비롯한 정치적, 철학적,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오히려 기독교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던 중세 때는 오히려 이슬람권과 중국이 더 이들 나라들보다 더 부유했었다.

아마도 '부자 나라 논증'을 지지하는 입장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의 교리와 정신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막스 베버의 주장을 근거로 하는지 모르겠다. 개신교 교리에 입각한 개인의 근면함과 충성이 결국 부의 축적을 낳고 국가의 부강함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근면함은 기독교에서만 말하는 덕목은 아닐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단순하진 않지만,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경제정책, 국제적 여건이 잘 맞으면 나라가 부유해질 수 있다.

최근의 여러 조사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부자 나라 논증'에 반대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2015년에 3월에 공개된 류 리서치 센터 통계는 종교적인 성향을 가진 국가일수록 가난한 국가이고(이 중에는 완벽한 기독교 국가들이 있다.), 이와 별개로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을수록 선진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도 있다. 또한 GDP가 일정 수준 이하인 국가에서 종교인구 비율이 높을수록 GDP가 낮을 가능성이 높으며, 선진국 중에서는 시민들이 기도를 하는 횟수가 적은 국가일수록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가 낮다는 통계도 있다. 바꿔 말하면 종교성이 높은 국가일수록 GDP 도 낮으며 경제적 불평등도 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제는 기독교에서 스스로 '부자 나라 논증'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 이미 파훼된 실패한 논증이기 때문이다. 이미 반박된 주장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기독교를 게토화 시키고 조롱거리로 만든다. 둘째, 이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바탕에는 부와 번영이 옳음을 증명한다는 생각이 깔려있기에 결국 번영신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셋째,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역사와 사회를 단순화시켜 이해하려는 태도는 정직성의 문제와 별개로 기독교의 반지성주의의 단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위 이유와 별개로 이 논리가 가장 싫은 개인적인 이유는, 소위 기독교 국가라는 나라들의 식민지배로 인해 과거에 희생된 사람들과 독립 후에도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반성과 성찰은커녕 그들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박재익은, 보수적인 대형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평범한 교회 집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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