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불참이라는 일탈 시도의 허탈감
주일 예배 불참이라는 일탈 시도의 허탈감
  • 진일교
  • 승인 2017.12.11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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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늦봄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일요일 낮 예배에 출석하지 않았다. 다른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한 번 빠지고 싶었다. 대입 재수를 위해 집을 나와 학원 근처 독서실에 있었던 덕분에 주일 아침부터 주위의 눈치를 보거나 부모님의 성화를 피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일요일에 교회 한 번 안 나가는 게 뭔 대수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없었다는 걸 알면 다르게 느낄 것이다. 한 예로 중고등학교 때 난 수학여행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건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나들과 동생도 가지 못했다. 수학여행 일정에 꼭 일요일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단호했다. 수학여행 기간에는 입이 잔뜩 나온 상태로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곤 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있던 20살 늦봄에 나는 처음으로 일탈을 꿈꿨던 것이다. 드디어 토요일이 지나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가까운 시내에 나가 거리를 활보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실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해졌다.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만약 밖에 나가면 마른하늘에 번개가 쳐 나를 때릴 것 같았고, 도로에 나가면 차가 갑자기 나를 덮칠 것만도 같았다.

그날은 그래서 그렇게 저녁때까지 독서실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같은 독서실에서 오랫동안 공무원 고시 공부를 하던 형이 그런 나를 측은하게 보았다. 그리고는 우리 둘 밖에 없는 독서실에서 라면을 끓여주었다.

저녁이 되고 이제 6시간 정도만 지나면 주일이 끝나니 내 계획은 곧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날 완전한 일탈을 하지 못했다. 저녁에 가까운 교회 저녁예배를 참석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느꼈던 편안함과 안도감이 나를 평온으로 이끌었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불안감이 신앙적인 것인가 아니면 습관적 신앙생활 때문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종교적 행위의 불이행에 극도로 불안해하는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후자였다. 난 스스로 신앙을 정의하지 못했고, 20년의 신앙생활이 부모에 의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습관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나에게 종교적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방언도 체험했고, 기도하면서 신비한 체험도 했다. 성경을 알았고, 이미 성경은 20세의 나이에 적어도 10독 이상은 한 상태였다. 교회에서 성경퀴즈대회를 열면 나를 제외하고 치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은 그 시절 내가 느끼는 신앙의 괴리감을 더 강화시킬 뿐 바른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했다. 20살의 첫 종교적 일탈은 나에게 불안감과 함께 허탈감을 동시에 주었다. 내 자녀들에게는 나의 그 시절의 이런 감정을 절대로 심어주고 싶지 않다.

 

글쓴이 진일교 목사는, 목사 아들 목사로 광주제일침례교회 대표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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