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장 길에서 원단 냄새, 엄마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그 시장 길에서 원단 냄새, 엄마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 황교진
  • 승인 2017.12.0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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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니가 현재 백수인 내게 주신 뜻밖의 선물
광장시장 먹거리 ⓒ한국관광공사
광장시장 먹거리 ⓒ한국관광공사

 

오늘 어머니가 20년 넘게 일하셨던 서울 종로5가의 광장시장에 갔다. 제대로 쉬어 본 적 없이 고단하게 일하신 현장에 일부러 가본 게 아니다. 금융 조회를 했더니 광장시장 마을금고의 어머니 계좌에 200여만 원 있어 상속받으러 갔다. 식물 상태로 투병하신 지난 20년 동안 그 계좌가 있는 줄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는 밤 10시에 광장시장에 출근하셨다. 무더위와 강추위도 상관없이 새벽을 통과하며 숙녀복 장사를 하셨고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어머니 뵈러 종로에 나갔다. 가게 안까지 가본 적은 드물다. 보령약국 앞에서 만나 같이 퇴근하며 을지로 롯데에서 내 첫 정장을 같이 산 것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그 후로 광장시장에 간 것은 어머니 뇌출혈로 쓰러지신 그날 여동생이 가게 일을 보러 나갈 때 너무 마음 아프고 안쓰러워 가게 문을 같이 열어주러 매일 밤 광장시장에 갔다. 당시 대통령 건거 기간이었고 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대통령이 바뀌는 순간 시장에서 울려 퍼진 함성이 기억난다. 광장시장 상인중에는 DJ 정권을 갈망한 분들이 많았다.

초중학교 시절 내가 소풍 갈 때면 김밥을 싸주실 시간이 안 되어 광장시장 김밥을 전날 사 오셔서 소풍 가방에 넣어주시곤 했다. 지금 충무김밥처럼 작고 긴 형태였는데 어머니 말로는 그 김밥 집은 광장시장에서만 장사를 오래 하셔서 돈을 많이 벌어 벤츠를 몰고 다닌다고 하셨다. 후에 마약김밥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김밥이 내가 초등, 중등 때 소풍에서 먹던 광장시장 김밥과 비슷하다.

일하시느라 자기 몸도 챙기지 못한 어머니의 광장시장은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호떡집, 김밥집, 떡볶이집 상인들은 오래도록 장사하신 얼굴의 주름이 패여 있고, 안쪽 골목은 원단 가게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어디쯤이 어머니 가게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그 안에서 일하신 마지막 날에서 20년이 흘렀으니까. 기억나는 것은 가게를 밝히는 전구가 일상용보다 지름이 좀 큰 것이었는데 전열기처럼 뜨거워 겨울에는 난방 효과까지 머리 위에서 일으켜 주었다. 가게는 평수가 작았지만 그 전구는 매일 하나씩 새로 갈아주어야 할 만큼 빛이 강하고 뜨거웠다. 여름에는 얼마나 더우셨을까.

광장시장 마을금고 위치가 시장 안쪽에 있기에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가게 일로 엄마는 남매 교육비, 우리 집 생활비를 모두 건져 올리셨다. 쉬고 싶은 날도 피곤한 눈 비비며 이 시장에 나오셔서 가게 전구를 새로 갈아 끼며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인들 대상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하셨다.

어머니 계좌를 인출하려면 복잡한 서류를 내야 했다. 어머니 가족관계 증명서, 사망진단서, 제적등본, 기본증명서 그리고 아버지와 나, 여동생의 인감증명, 기본증명서, 신분증과 도장 등. 다 잘 챙겨왔다. 한참을 기다려 240만 원 정도가 내 통장에 입금됐다. 그동안 어머니 병원비로 지불한 내역은 전세 한 채 값은 족히 되지만, 현재 백수인 내게 주신 뜻밖의 선물로 다가왔다.

마을금고에서 광장시장을 다시 빠져 나오면서 종로5가역까지 걷는 그 시장 길에서 원단 냄새, 인간 냄새, 엄마 냄새가 섞여 코로 들어왔다. 이제 다시 여기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코가 시큰했다. 지금은 천국에서 이런 복잡하고 여가 없는 시장과는 달리 편하게 계실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뭔지 모를 허전함과 복잡함이 머리를 채우지만 조금은 쉬어 가면서 더 정리할 게 남았는지 살피며 산다. 잘 살고 싶다.

 

글쓴이 황교진은, 출판편집인이자 <어머니는 소풍 중>의 저자이며 강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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