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털에 얽힌 아주 익숙한 표현이 있다. 많이 주고 받은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곤혹감을 느끼지 않는 성경 독자가 절대 다수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여주는 풍경을 갖고 고민하여야 한다. 왜 일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많은 이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유럽풍의 푸른 풀밭에서 꼴을 뜯는 양의 희고 흰 양털 덕분에 아무런 곤혹함 없이 이 본문을 주고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성경의 땅을 제대로(?) 방문한 이는 곤혹감을 느낀다. 상상하던 백옥같이 흰 양털을 가진 양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대감에 걸맞는 양털을 가진 양은 눈에 띄지 않는다. 멀리서 봐도 그렇다. 혹시 멀리서 봐서 양털이 희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가까이서 봐도 더욱 그렇다.
혹시 양털을 깍고 나면 다시금 흰 양털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양털을 깍고 다시 털이 난 양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죄가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이사야가 외칠 때, 그가 떠올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외침을 들었던 이들은 무엇을 그려냈을까?
정말 흰 양털을 그림언어로 사용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때국물 줄줄 흐르는 것 같은 누렇기만 한 양털을 희다고 생각한 것일까?
우리와 그 옛날 이사야를 비롯한 이들의 색감이 다른 것일까?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어떤 특정 사람이나 사물, 지역이나 무리를 지칭하는 표현이 있다.
가장 강한 어떤 특징을 일반화하여 표현하는 그런 것이다,
저 수많은 양떼 속에 희기만 한 양털을 가진 것을 본다. 바로 새끼 양, 어린 양의 양털이다.
양털, 희기만 한 양털의 느낌은 이런 것에 바탕을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