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무명
조선무명
  • 배일동
  • 승인 2017.11.3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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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동
배일동

 

소릿꾼에게 한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베의 결은 마치 소릿꾼의 심성과 예술심리와 한결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베의 질감과 조직과 품미를 매우 잘 선택해야 합니다. 눈 어둔 심봉사와 가난한 흥보가 비단옷과는 상리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선 삼베와 모시 무명으로 한복을 해 입는 게 큰 바램이었습니다만 값이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냈습니다. 어렸을 적에 보면 저희 할머니 할아버님들께서 손수 기르시고 채취하여 지어 입으셨던 흔하디흔한 옷감이 이제는 오히려 비단보다 값이 훨씬 더나가는 귀물이 되였습니다.

거친 삼베와 섬세한 세모시도 좋거니와 난 무명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삼베와 모시의 성질을 아우른 듯 부드러운 그 무명의 질감을 좋아합니다. 어쩌면 어려서 목화나무의 여린 무명다래를 따먹던 추억이 있어선지 또 목화솜을 흔하게 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정이 갑니다.

작년에 무명옷을 지어 입을 량으로 드물게 우리 조선 무명을 짜는 곳을 수소문해서 알아보았지만, 바지저고리 두루마기까지 지을 옷감의 값이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올해 혹시나 값이 떨어졌을까하고 그곳에 다시 전화했더니 오히려 값이 더 웃돌았습니다. 작년에 문의 하던 나의 음성을 알아들은 그분은 대뜸 뭐에다 쓸려고 그렇게 무명을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나의 사정을 대충 애기했더니 조합원들과 상의해서 값을 조정해보겠다고 하시길래 며칠 기다렸습니다. 다음날 당장 연락이 와서 뜬금없이 그냥 무명 두필을 선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난 한사코 값을 합당하게 절충하려고만 했지만, 이미 결정된 거라고 하면서 오늘 기어코 저리도 고운 조선무명 두필을 부쳐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에 전화를 드렸더니 우리 베로 우리 옷을 입으시고 원 없이 소리를 내질러 주시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내년 봄에 혹여 시간 나시면 소리 한 자락만 들려주면 그만이라고 하시니 석 달 열흘 독공을 해야겠습니다. 전혀 생면부지인데 살다가 이런 감격도 있을까싶습니다. 지금 심정 같아선 없는 목소리도 나올 것만 같습니다. 너무도 고마운 일입니다.. 뱃심을 더 넣어서 정성껏 소리해야겠습니다. 베틀에다 한 올 한 올 정성껏 짜신 그 노고를 몸에 실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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