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잘 살려내는 설교'를 도전하는 책
'본문을 잘 살려내는 설교'를 도전하는 책
  • 나연수
  • 승인 2019.05.1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터브루그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 성서유니온, 2018년
월터브루그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 성서유니온, 2018년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의 첫 번째 장의 제목은 ‘오직 설교라야 한다’ 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설교자의 책임과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제목이다. 이와 비슷한 제목을 월터 브루그만의 책 <마침내 시인이 온다>에서 발견했다. ‘말씀이면 충분하다’ 물론 로이드 존스는 ‘설교 행위’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했다면 월터 브루그만은 ‘본문을 잘 살려내는 설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말하는 설교란, 성경의 역사 가운데 지속적으로 행해졌던 것으로서 죄로 인하여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의 상상력을 불어 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다루었던 몇몇 주제들을 다시 다루지만 좀 더 설교에 집중하고 그중에서도 청중 분석에 공을 들인다. 설교자들 앞에 누가 앉아 있는가? 죄책으로 인하여 양심이 마비되었고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뿐 아니라 옆에 사는 이웃과도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이다. 심지어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탐심을 공급받아 스스로 쉬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에 별 수 없다고 스스로 순응하기로 마음먹고 어떠한 대안도 상상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놀랍게도 교회에 찾아와서 설교자 앞에 앉아 있다.

설교자는 이런 청중을 앞에 놓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 설교자 앞에 앉아 있는 청중들이 겪고 있는 괴로움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실 설교자가 청중 앞에 서기 전에 숙지하는 성경 본문도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성경 본문을 수학 공식 같은 산문으로 축소하면 안 된다고 지극히 경계한다. 저자는 위에 언급한 사람들을 향한 적절한 하나님의 대안이 본문 안에 이미 풍성하게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직접 말하진 않지만, 적지 않은 설교자들이 본문에도 충분히 들어가지 못하고 청중에게도 다가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책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것 같다. 성경 본문을 너무 쉽게 한 두 문장의 명제로 만들고 그것을 모든 청중에게 공식처럼 적용하려는 설교자가 문제라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설교자는 청중 편에서 그들의 괴로움을 하나님 앞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께서 느끼는 답답함과 은혜로 주시는 대안을 용감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다니엘이면서 느부갓네살이다. 우리는 복종을 부추기는 유혹에 다니엘처럼 저항하고, 자주권을 부추기는 유혹에 느부갓네살처럼 버리도록 권유받는다.”(p. 207)

이처럼 하나님을 상상하기 힘든 세상 가운데에서 틈을 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흘려보내는 것이 설교자이다. 그리고 그런 설교자는 본문을 지루한 산문으로 만들지 않고, 시인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주목하게 만들어 상상력을 깨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도록 만든다.

나 역시 설교자 이다 보니 이런 종류의 글에 아무래도 관심이 간다. “말씀이면 충분하다.”, “오직 설교여야 한다.”는 주장이 때로는 용기를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다. 그러나 솔직하게 깊고 넓은 성경 본문을 잘 살려낼 뿐 아니라 성경만큼이나 어려운 청중을 분석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라는 고민은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설교가 너무 어렵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느꼈던 솔직한 마음이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