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설교의 전범을 보여주는 책
평신도 설교의 전범을 보여주는 책
  • 홍순주
  • 승인 2019.03.18 0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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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수, 만남, IVP, 2018년
송인수, 만남, IVP, 2018년
송인수, 만남, IVP, 2018년

<만남>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대표의 설교를 엮어낸 책입니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실한 해석, 설교자가 살아온 래디컬한 삶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명설교집입니다. 강추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평신도 설교에 대한 제 단상을 나누는 글입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나서 결혼식 주례를 한번 해보았습니다. 마흔도 채 되기 전에 했던 인생 첫 주례가 제 인생에서 가장 부담스럽고 긴장되었던 순간 중 하나로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때 얘기만 나오면 매번 지금처럼 앓는 소리를 하지만, 정작 주례를 준비한 그 시간을 통해 저는 너무나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주례 설교를 준비하며 몇 번이고 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결혼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 때문에 결혼했으며 어떻게 결혼생활을 해왔는지, 나에게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고 아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수없이 묻고 또 물으며 성찰하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이후 저의 결혼생활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중한 기회를 목사들이 독점할 것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면 좋지 않을까.’ 결혼식과 관련하여 점점 다양한 형태와 선택지들이 생겨나는 추세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리스도인 커플이 결혼할 때 목회자가 주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그로 인한 폐해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쪽과 독점하는 쪽 모두가 경험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얻지 못하는 쪽은 두렵고 떨림으로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마음을 새롭게 할 소중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독점하는 쪽은 ‘익숙함이 주는 무감동과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가령 제가 앞으로 수십 차례의 주례를 하게 된다면 분명 제 마음은 처음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몇 편의 썩 괜찮은 주례설교가 만들어진다면 돌려막기가 시작되겠지요. 돌려막기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매 결혼식마다 새로운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 태도는 건조하고 직업적인 것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저는 결혼식 주례를 부수입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는 가능한 한 주례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누군가 주례 부탁을 해오면 그들에게 주례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솔직한 마음을 물어볼 생각입니다. 제가 주례를 설만큼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들이 알고 있는 목사 중에 그나마 부탁할만한 사람이었던 것인지를요. 만약 후자라면 반드시 목사가 주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저보다 더 그들에게 의미있는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라고 권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러한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솔직하게 던져서 그 질문을 통과한 커플들의 주례만 선다면 저의 주례 경험은 평생 다섯 번 이내가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러기를 바래봅니다. 

주례의 권한과 책임을 목사가 독점하지 않고 평신도들과 공유한다면,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자기 생에 한두 번 정도의 주례를 해 볼 수 있다면 그 경험은 이후 우리의 삶에 큰 유익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목회자가 메시지를 독점하는 것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은,

교회에서 메시지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 권한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예배에서의 설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설교가인 목회자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급적 많은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나누어지는 것은 당사자와 교회에 큰 유익이 되리라 믿습니다. 반드시 형식이 설교일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공부 인도도 좋고 공동체에 유익이 될만한 주제에 대한 강의도 좋고 간증도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공동체를 향해 말씀하시는 통로가 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충만을 구하게 될 것이고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더욱 힘쓰게 될 것입니다. 아내가 조만간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물론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지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제 생각이 옳다고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권위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의 모습을 염려하며 개탄합니다. 그 우려에 일면 공감합니다. 저는 건강한 권위는 공동체에 필요하다 믿습니다. 권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권위를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권위주의의 대안은 ‘권위의 제거’가 아니라 ‘권위의 공유’라고 믿습니다. 어찌되었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메시지를 독점하는 것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은, 교회에서 메시지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 권한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인들 모두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되는 교회를 꿈꿉니다.

물론 모든 평신도가 송인수 대표처럼 설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만남>을 통해 평신도 설교의 전범을 보았습니다. ‘평신도가 무슨 자격과 역량으로 설교를 하겠냐’고 말하는 목사가 있다면 저는 말없이 그에게 이 책 <만남>을 선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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