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진일교
  • 승인 2017.11.25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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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 아들의 명성교회 유감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 JTBC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 JTBC

. 알겠습니다.

아버지 목회를 보면서 절대 목회는 하지 않겠다고 하던 아들 목사는 부르심을 받고 다시 한 번 아버지 목회지의 후임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아버지 목회지에서 후임을 맡게 된 전국의 80% 이상의 아들 목사들은 매 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현장을 떠나야 될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요즈음 매주가 아니라 매일 매일이 그런 삶의 연속이다. 설교시간에 가끔 마뜩찮게 보이는 성도들의 눈빛을 보며 오해 아닌 오해를 한다. 진지한 모습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성도들을 대할 때면 지레 가슴부터 철렁거린다.

나만 그런가요?

이미 몸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떠나면 된다고요? 그런 말 쉽게 하고 쉽게 결정하는 그들이 진정 부럽습니다. 교회도 생물이고, 내 삶도 생물입니다.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비인간적이고, 예수의 방법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들 목사들은 아버지가 목사여서 그저 마냥 행복하지도 않고, 후임목사인 경우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들 목사들은 돈과 명예에 목맨 잠재적 세습주의자가 아닙니다.

최근 명성교회 사태에 대한 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몇 편의 긴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그 글을 페이스 북 담벼락에 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글을 게시한 후 분명 논란만 가중시키고 관계도 깨질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그저 아버지 목회지의 후임이 된 아들 목사들의 상황을 단순하게 보지 말고 사안별로 다르게 접근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현상만 보지 말고 본질적 개혁이 무엇인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제가 들은 말들은, “세습했으면 엄연히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고, 회개하고 세습 받은 교회를 나올 생각이 아니면 조용히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세습 반대하는 목사님들!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들이 목사 한다고 하면 절대 시키지 마세요. 그 순간부터 아들은 단지 목사 아들이라는 험한 삶을 살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특혜를 받게 되니까요. 그거 아주 불공평한 것이랍니다. 절대 어떤 특혜도 주지 않을 거라고요? 그렇지만 아들 목사에게 아버지 목사는 존재 그 자체가 특혜랍니다. 그런 기독교 가정의 배경 없이 홀로 신학하고 목사가 되려는 신학생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피해의식을 갖게 만드는 존재이거든요.

명성교회 세습 반대 1인 첫 시위 시작하신 김동호 목사님! 진심으로 목사님의 지나온 목회방식과 지금 하고 계신 여러 가지 개혁 운동에 대해 지지하고 존경을 표합니다. 그런데요, 목사님이 대형교회 목사님이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이미 자녀들에게 큰 특혜를 주셨답니다.

세습은 다른 것이라고요?

물론 저는 세습이 교회 후임 결정에 있어 최선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차선이 되었든 차악이 되었든 또는 최악이 되었든 아들이 아버지의 목회 현장을 이어받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너무 단순 도식화해서 싸잡아 하나님 앞에 죄지은 범죄자로 만들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사 아버지의 목회지를 아들이 이어받는 많은 상황이 목회지를 찾는 목사님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뺏는 것이라는 것에 일정 정도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목사의 아들은 이미 신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공평의 선에 설 수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정당화 시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지독히도 싫어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목회자 추천서 써보셨지요? 영향력 있는 사람의 추천서는 당락을 결정하는데 매우 결정적입니다. 이미 이번 사태에 대한 목사님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만 봐도 그 힘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공평해야지요.

저도 끊임없이 공평과 정의와 평화에 대해 설교합니다. 그러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이것들을 세워나갈지에 대해서는 한가지로 정답을 주지 못합니다.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에 대해 저도 찬성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후임자를 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상합니다.

그런데 왜 거길 나올 용기가 없느냐고요?

말씀드렸잖습니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요. 정의롭고 용감하신 분들은 과감히 모든 것을 정의롭게 쉽게 결단하시겠지만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단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것이 1+1=2라는 단순 수식으로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시잖아요. 저와 같은 목사 가정의 2세대 또는 3세대 아들 목사들이 그냥 안일하게 교회에 안주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세습, 문제 많지요.

그리고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공격하시면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제가 그냥 조용히 묻혀 있으면 될 일을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저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상황에서 움츠리고 부채의식을 평생 느끼며 살아갈 목사 아들들(PK)의 현실이 애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명성교회 일은 유감입니다.

 

글쓴이 진일교 목사는, 목사 아들 목사로 광주제일침례교회 대표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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