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 Huuka Kim
  • 승인 2019.01.05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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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샘솟는 기쁨, 2013년

“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12장 35절)

 

톨스토이,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샘솟는 기쁨, 2013년

“사모를 내려놓고 다시 전도사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사역결정을 놓고 함께 기도할 때 담임목사님의 첫 말씀이셨다. 사모의 길도 결코 쉽지 않지만, 정통 한국교회에서 여전도사의 사역과 대우를 염려한 까닭이시리라. 하지만 나에게 있어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사역의 소명과 생계. 소명이냐 직업으로서의 생계냐 였다. 이것은 생각보다도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를 고민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역 외에 없었다.

남편의 목회지를 놓고 기도하며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나이제한과 여러 가지 이유로 청빙이 거절되었고 우리 둘은 누구든지 한 사람의 사역지가 정해지는 곳으로 따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두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콜이 왔다. 하지만 당회가 정한 사례는 교육전도사사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어차피 대구로 가기로 작정을 했다면 더 많은 사례를 주는 곳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교육전도사 파트자리였지만 이곳의 사례와 동일했다. 멘토 목사님께 급히 전화해 부탁을 드렸다. “낙하산”한번 띄워 달라고 말이다. 멘토 목사님은 흔쾌히 전화를 해 주셨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가위에 눌리고 울면서 깨어났다. “내가 너를 굶긴 적이 있느냐. 널 부른 곳에서 녹을 먹게 하지 않았느냐.” 나는 바로 담임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새해 난 지금 이곳에 있다.

우리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담임목사님의 배려로 부교역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루 쉴 수 있다. 사역이 시작되고 책을 읽지 못했는데 금요 새벽을 나 자신을 위한 쉼의 시간으로 가지려 목요일 밤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었다. 톨스토이의 단편집.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이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이다. 우리들에게는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로 알려진 대작가이다. 위키백과에서는 톨스토이를 이렇게 소개한다.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삶을 사랑하는 톨스토이’와 ‘청교도적 설교자로서의 톨스토이’라는 ‘두 얼굴의 톨스토이’가 있다. 톨스토이의 세계에서는 두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가 계속해서 서로 싸운다. 후기로 갈수록 톨스토이는 ‘삶을 사랑하는 시인’에서 ‘인생의 교사’이자 ‘삶의 재판관’이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가 계속해서 서로 싸우는 그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만 볼 수도 있지만, 주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전일성이 드러난 세계로도 파악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사랑과 진리에 대한 관념들을 일반적·보편적 형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예술가이자 인생의 교사로서 이런 관념들에 대한 해답을 인류에게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예술 세계에서는 자족적 관념이 만들어내는 자기 완결적 순환 구조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관념을 통하여 그리고 그 관념의 실천을 통하여 절대적 자각자로서의 자기완성에 이르고자 하고, 자기 구원과 인간 구원에 도달하고자 했다.“

왜 몰랐을까? 그의 작품을 많이도 읽었건만 톨스토이의 작품세계를 파악 하지 못했던 것은 고교시절 폭식하듯 책을 읽었던 시기의 독서였던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의 고뇌, 진리에 대한 갈망과 방황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난다.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그가 오십 세를 넘긴 나이에 기독교로 회심하면서 영적 방황을 마치고 삶의 본질을 알게 된 후 쓴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삶. 사랑. 믿음에 대하여로 나뉘어 각각 세편의 단편들을 싣고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을 통해 그가 바라본 삶. 사랑. 믿음을 들여다보자.

 

Huuka Kim
Huuka Kim

1부 삶에 대하여.

이야기의 문을 여는 “있는 자들의 한가한 대화”는 읽는 이들에게 둔기로 한 대 맞은 듯 고통은 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 날 한 저택에 몇몇 사람이 모여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가 자신의 삶의 불만족을 토로한다. 자신을 위해 살아오는 것도 벅찼다는 것. 이웃을 돌볼 사이도 하나님을 기억할 시간도 없었음을 고백했다. 그 때 그 자리에 함께한 청년은 왜 그런 삶을 사는가? 자신을 부정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경건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 청년의 결심을 듣고 그 자리에 있는 아내와 연배의 노인들은 모두 한 마디씩 건네게 된다. 어떤 이는 자녀를 혼란하게 해서는 안 되고, 결혼한 남자는 그의 부인과 자녀를 힘들게 하면 안 되고, 노인이 되어서는 새로운 것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이렇게 말을 한다. 

 “결국 우리 중 누구도 올바르게 살아갈 가능성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군요 그저 말만 늘어놓을 뿐. "- p.24

톨스토이는 이 글을 통해 믿음생활의 어려움. 자신의 연약함과 세상 속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힘듦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 이야기너머 톨스토이는 나의 온전하지 않은 신앙생활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다른 이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끌어내리려는 숨은 나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 에서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비겁을 겹쳐 보이지 않는가? 그의 경건과 회심은 나의 불경건을 도드라지게 보이기에 그의 경건과 회심을 필사적으로 막게 되는 사악한 신앙인의 모습.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민낯이다.

두 번째 실려 있는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단편은 마치 천로역정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생의 참 위로를 찾길 원했던 줄리어스의 삶. 그는 생의 마지막 그리스도인 공동체 말라비틀어진 포도밭에서 비로소 참 평안을 누리게 된다. 참 평안은 참 빛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거니는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인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이라면 과연 우리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쫓고 있으며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는가? 빛 가운데로 행하게 하고 우리들의 믿음을 지켜갈 수 있는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톨스토이는 팜필리우스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 믿음을 실행하는 힘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 어떤 사람은 그 힘이 많은 반면 어떤 사람은 부족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인생의 참된 길을 향해 나아간 반면 어떤 사람은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우리 모두의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과 함께 서 있고 그를 본받으려 노력하고 오직 그분 안에서만 행복을 발견할 수 있지 .” - p. 35

톨스토이는 믿음의 실행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옴을 그분을 사랑함으로 그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힘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일리야스의 마지막 이야기로 톨스토이는 삶에 관하여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2부 사랑에 관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세 가지 진리를 깨우쳐야만 하는 미카엘 천사. 세 가지의 진리는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유한한 생명체, 깨지고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에 남겨두신 하나님의 형상. 그것이 바로 사람안에 남겨진 사랑이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짧은 구두수선공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떠난 오늘의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결국 사랑이 넘쳐야 할 교회에 사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역으로 톨스토이는 말해준다.

 

3부 믿음에 대하여

은자를 가르친 주교의 이야기,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 역시 실패한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천국문의 문지기로 있을 수 있는 것은 회개의 역사 때문이다. 구원의 역사는 회개하는 죄인에게 언제든 열려 있다는 것을 회개하는 죄인을 통해 말해준다. 억울한 누명을 쓴 악시노프를 통해 모든 진실을 알고 계시지만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오래 참고 계심이라는 것을 그 기다리심으로 통해 악을 행한 자들까지도 회개의 길로 돌아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임을 배우게 된다.

260여 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풍성하다.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명령은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그 길을 걸으라는 명령으로 치환된다. 그 길은 고통이요, 그 길은 희생의 길이며 그 길은 걸어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 길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고통은 그 길을 걸어가는 자의 몫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빛 가운데 살고 우리의 삶은 육신에 의지하지 않아. 우리에 대한 공격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박해자와 적들이지. 그들은 가슴속에 독사처럼 키우고 있는 적개심과 증오의 감정으로 고통을 받게 되지.” - p. 113

고통을 대하는 톨스토이의 방식. 그 방식조차도 거룩한 영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삿짐을 풀며 정리하다 발견한 보석과도 같은 책이다. 2019년의 나의 첫 책으로, 내게 많은 격려와 위로가 되어 주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감을 두려워말라.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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