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신학적 물줄기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책
시편의 신학적 물줄기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책
  • 유영성
  • 승인 2018.12.27 0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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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열, 새로운 시편 연구, 새물결플러스, 2018년
방정열, 새로운 시편 연구, 새물결플러스, 2018년

시편과 삶의 정황(Sitz im Leben), 그리고 정경비평의 의미. 시편은 과연 얼마나 교회에서 설교 되고 있고 공부되고 있을까? 기독교인들은 시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시편'이라는 이름이 가진 뜻이 가장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보통 교회 안에서는 송영이나 찬미 또는 예식적 측면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호하다고 하겠고 가장 잘못된 사용의 예들은 시편이라고 하는 성경 중에서 일부의 장을 일방적으로 묵상하는 데에 머물거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구속사적 해석을 하는 것들이다.

시편 23, 1, 139편 등등 중요하고 익숙한 시들만 선택적으로 읽거나 설교하고 있는 한국 교회 강단의 한계를 생각해 볼 때 루터가 한 "성경 전체의 축소판"이라는 말이나 칼빈이 제시한 "영혼의 해부학"이라는 표현은 무색해지고 만다. 시편의 한계지어진 활용은 이 책을 예전적으로 사용한 가톨릭 역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양식비평에서 본문비평으로 넘어가게 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개신교의 학문 성향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시편과 관련해서 양식비평, 삶의 정황(Sitz im Leben), 텍스트-내재적 연구, 수사 비평, 정경비평 등의 용어에 익숙한 목회자나 신학 연구자들이 많지 않은 게 아쉽지만 사실이다. 어쩌면 시편은 통시적으로 연구되지 못하고 있는 불운의 책이며 그만큼 신학적 함의들이 무시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편을 읽을 때마다 과연 이 시들이 일관성을 가진 하나의 맥락을 따라 지어졌거나 편집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늘 가졌었다.

이런 의문을 가진 이유는 분명하다. 시편을 읽으면 내재적으로 텍스트 자체가 지닌 의미를 말해주는 미묘한 흐름을 인지할 수 있는데 150편에 달하는 분량이 주는 중압감은 그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에 어려움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나와 있던 시편연구에서 차지하고 있는 양식비평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시편 리더들이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다 가끔 만나는 옹달샘 같은 시들 몇 개에 감동하는 것 자체에 만족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편 해석에 영향을 끼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해체주의나 독자반응비평(Reader-Response Criticism)의 대표적인 인물인 스탠리 피쉬(Stanley Fish, 80) 등이 내세운 텍스트 자체에 대한 불확정적 해석 틀이 있고 페미니즘적 연구 방향성도 깊이 있게 검토되고 있는 현대 시편 해석의 흐름 속에서 이 책의 저자 방정열 박사는 정경비평적 입장에서 시편을 하나의 신학적인 흐름을 가진 책으로 해석해 나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굳은 기반을 지닌 시편 연구에서 Sitz im Leben적 해석 주류와 비교하면 정경비판적 해석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훨씬 담대한 노력이라고 보인다신학적인 책이라면 틀림없이 그 신학적 관점을 구조 안에 담아야 한다. 그런 구조를 먼저 5개로 구분하고 각 부분이 지닌 신학적 메시지들을 살펴보는 저자의 관점은 시편 해석에 대한 보다 교회 중심적이고 청중을 향한 시대 선포적 지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관점에서 시편을 이해한다면, 설교자들이 얻게 되는 유익은 기존의 삶의 정황적 차원에서 해왔던 시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시대적 선포로 풀어낼 수 있는 큰 신학적 줄기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며 증명해내려는 신학적인 맥락은 '인간-왕과 하나님-왕의 대조'를 통해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시편을 정경비판하는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저자의 연구가 가지는 가치는 150편에 달하는 시편 각 장을 분류와 연계 및 통합시키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큰 신학적 물줄기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있다.

저자와는 SNS를 통하여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오랜 소통을 해왔다. 상당한 시편 연구자라는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책을 제대로 살펴보면서 이토록 훌륭한 학자였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며 존경심을 더 가지게 되었다. 시편 연구를 통해 신학적인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깊이 있는 설교를 하고자 하는 목회자나 연구자들에게 이 책을 전심으로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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