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의책과일상] 용기의 역설로 찾는 행복
[김영웅의책과일상] 용기의 역설로 찾는 행복
  • 김영웅
  • 승인 2018.12.20 0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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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게, 미움 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2014년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게, 미움 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2014년

과장은 열등감의 표출이고, ‘열등감과 오만함은 교만의 두 얼굴이라는 분석은 인간관계로부터 숱하게 치이고 당하면서 맘 속에 쌓여온 차마 말 못할 설움과 함께 비싼 값을 치르고 얻어낸 나의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이다. 충분히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심리라는 것 자체가 어떤 방정식의 결과가 아니기에, 인간관계로부터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표현일 것이다.

일주일 전,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개념을 근저에 깔고 있는 심리학을 접했다. 아들러의 심리학에 나오는 개념들을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플라톤의 대화형식을 빌려 쓰여진 책, ‘미움 받을 용기를 통해서였다. 여간해선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겠다는 의지가 완고했던터라, 지난 주 가족과 함께 중고서점에 들려 이런저런 책들을 훑어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이 책을 결국 내가 구매하게 될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그런데 마침 누군가가 이 책을 다른 섹션에 꽂아놓았던 것이다. 때론 누군가의 우연찮은 실수나 게으름도 득이 될 때가 있는데, 이번엔 내가 그 수혜자인 셈이었다.

제목부터 내 관심을 끌었다. 책을 손에 들고보니 몇 년 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수 차례 들어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뜻밖의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펴서 앞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약 20분 뒤 난 이 책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자기계발서를 구입해본 적은 지난 10 년간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게로 와서 단지 자기계발서가 아닌, 지식의 확장과 함께, 내가 무지했거나 무시했던 인간심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깊은 통찰을 선사해준 고마운 책이 되어주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인간의 정신과 심리에 대해 연구한 세계적인 학자라고 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의 문을 연 사람이라면,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정신분석학을 심화시켜 의식과 무의식의 개념을 사용하여 분석심리학의 문을 연 사람이다. 아들러 역시 한때 프로이트의 제자였고 프로이트가 후계자로 지목한 인물이었지만,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반대하는 목적론을 주장했고, 그 결과 프로이트와 갈라서서 자신이 명명한 개인심리학의 개창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나는 프로이트의 그늘에 서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했다고도 한다.

아들러의 목적론은 그가 주창한 개인심리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이 책을 이루고 있는 다섯 꼭지 중 첫 번째 꼭지의 제목, “트라우마를 부정하라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원인론의 골자는 현재의 심리적 고통의 원인이 과거에 겪었던 트라우마라는 것이다. 원인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장점도 가지고 있지만, 이 이론은 현재를 과거에 종속시키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따라서 현재 고통 받는 의 변화하려는 의지는 철저히 무시되며, 마치 모든 것들이 과거에 이미 결정되었다는 결정론처럼, 현재도 미래도 평생 과거에 지배를 받는다는, 다소 끔찍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아들러의 목적론은 트라우마 자체를 부정한다. 이 이론에는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여기라는 현재만 존재할 뿐이다. 현재가 과거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은 현재 의 의지에 의해서 전적으로 조절될 수 있으며, 따라서 미래도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간단한 비교만으로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명해진다.

지금, 여기를 강조하는, 마치 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관을 떠올리게 하는, 아들러의 목적론에 따르면 현재가 과거의 지배를 받지 않기에, 어떤 사람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그 사람의 강한 의지만 있으면 문제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그리고 그 결과로 이어지는 행복한 삶을 얼마든지 일궈낼 수 있다. 한편, 개인의 의지가 특별히 강조되기 때문에, 아들러의 심리학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복 추구는 자칫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러는 이 부분에서도 역설적이고도 허를 찌르는 주장을 내놓는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공동체를 향한 삶에 있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인간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다. 그래서 타인을 평가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타인을 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타인은 친구다. 또한 타인과 비교하여 자기 스스로 열등감이나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할 수 있다든지 나는 강하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이렇게 하여 타자신뢰와 자기수용을 이룬 사람에겐 타자공헌, 즉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의 방식이 요구된다.

불행의 근원이 인간관계에 있다고 보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거꾸로 보면 행복의 원천 또한 인간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때 행복이란 곧 ''를 넘어 ''을 신뢰하며 ''에게 공헌하는 삶을 뜻한다. ''가 아닌 ''을 위한 삶을 살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자신이 가치 있다는 느낌은 인간에게 용기를 부여하며, 그 용기에 의해서 이루어진 공헌감이 곧 행복이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용기는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에 근거한 인간관계를 살아낼 때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타인으로부터의 미움을 개의치 않는 힘과 의지이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 것을 감안하고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타인을 신뢰하며 그들에게 공헌하여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길을 단호하게 선택하는 용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죽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중 빠지지 않는 것 한 가지가 바로 '남의 기대에 맞춘 삶을 살아왔던 것'이라고 한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그러한 삶이 행복과는 상관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남을 위한 삶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난 이 책을 읽고 이 부분에 대하여 분명해졌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 생활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방식이 아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수용과 타자신뢰, 그리고 타자공헌을 실천함으로써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당당한 행복추구권을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추구하는 삶이다. 

함께 사는 멋진 삶. 현실적으론 아들러가 제시하고 꿈꿨던 인간의 삶이 실현되기엔 다소 무리가 있겠다. 그렇지만,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그리고 부분적으로라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일상에서 실천에 옮겨보는 건 어떨까. 물론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현재 인간의 의지'가 유일한 희망과도 같은 길이기에 그 의지의 실행력이라든지, 그 의지를 충분히 넘어서며 압도하는 '자기애'의 문제라든지, 고려해 보아야 할 요소들이 많다. 그렇겠지만, 적어도 과거가 아닌 현재에 충실할 수 있다. 현재의 불행에 여러 핑계거리를 대지 않고 타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는 것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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