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淫人정한욱] 현대판 시편을 읽다
[書淫人정한욱] 현대판 시편을 읽다
  • 정한욱
  • 승인 2018.12.20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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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하우어워스. 신학자의 기도, 비아, 2018년
스탠리 하우어워스. 신학자의 기도, 비아, 2018년 

내게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두 얼굴을 가진 신학자교회를 위한 신학자들의 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근대 세계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예수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며, “관용이라는 이름의 거짓된 겸손을 모방하려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배신하려는 끝없는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일갈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떠올리기는 아주 쉽다그러나 “교회는 현대를 지배하는 소비주의 세계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자본주의의 희생자들과 함께 하는 낮선 거류민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거나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독교 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콘스탄틴주의의 유혹에 맞서 존 요더를 따라 평화주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하우어워스까지 ‘보수 정통’ 그리스도인들이 마냥 “우리 편이라고만 여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학자의 기도는 하우어워스가 듀크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윤리학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써서 드렸던 기도와 다른 여러 곳에서 공적 사적으로 행한 기도들을 모은 책이다이 책에 실린 기도문들은 특별히 화려하거나 장중하거나 아름답지 않으며겉으로 보이는 겸손한 어투와 부드러운 태도의 이면에는 자주 강철같이 단단한 신학적 심지 - 심지어 가끔은 찌르는 칼까지도 - 가 감춰져 있다

그러나 간결하고 직선적이며 일견 투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기도들은, “구체적인 삶이라는 정황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과 두려움때로는 원망과 곤혹스러움좌절감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현대판 시편이다. 이뿐 아니라, “경배해야 마땅한 이에게 그에 맞는 경배를 올려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위해 '거룩'해지지는 않으려 한” 이 신학자의 모습을 잘 담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기도들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신학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진정성만은 도무지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진실의 힘’ 이다바로 그 진실함 안에 신학적 견해가 다른 그리스도인도 하나로 묶는 성령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그래서 그의 자전적 회고록인 한나의 아이나 가상칠언 묵상집인 십자가 위의 예수 같은 책을 읽으며 그다지 편안하지 않던 내 마음이 이 책에 담긴 하우어워스의 기도를 접하고는 눈 녹듯 녹아내렸던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주옥같은 기도 중에서 오랫동안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있는 내게 특별히 마음에 닿았던 기도 한편을 소개할까 한다.

고양이 터크의 죽음을 기리며

뜨거운 마음을 가지신 주님,
당신은 우리 중 하나가 되어 우리를 찾아오심으로
당신께서 우리의 사랑을 바라심을,
그 끝없는 갈망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 세계,

피조물들을 사랑하며
당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모든 참된 사랑은
모두 당신에게서 비롯됨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한 터크의 사랑,
터크를 위한 우리의 사랑은 모두
당신께서 주신 사랑을 밝히는 불이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당신의 사랑에 참여합니다.
터크의 멋진 삶을 허락하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찬미합니다.

터크의 침착함품위용맹함유머욕구인내,
그는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며
서로를 더 사랑하게,
그리하여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터크가 그립습니다.
상실감으로 인해 그를 기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그 기억이 가져오는 슬픔은
터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기쁨에 메이게 하소서.

우리가 그러하듯터크 또한 당신께서 지으신영광스러운 피조 세계의 일부이자
당신의 나라를 가리키는 징조임을 확신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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