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야단맞음, 돌이킴, 성숙
갈등, 야단맞음, 돌이킴, 성숙
  • 하창완
  • 승인 2018.11.22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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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완 목사의 큐티목소리나눔 - 고후 7:2-16

고린도후서 7장 들어서 갑자기 편지의 어조가 바뀝니다. 그동안은 고린도 교인들의 배척을 염두에 두고서 자신의 사도됨과 사역의 의미를 하나님 앞에서 비장미 넘치게 기록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어조가 엄청 부드러워지고 편해집니다.

아마 바울은 계속 이동하면서 이 고린도후서를 틈틈이 기록했을 것 같은데요. 1~6장까지 기록을 한 상황에서 고린도로 보냈던 디도가 바울에게로 돌아온 겁니다. 그가 갈 때 엄히 꾸짖는 편지를 들고 갔었더랬죠. 근데 거기에 대해 고린도 성도들이 예기치 않았던 반응,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소식을 듣게 된 겁니다.? 그래서 급 태도가 바뀌어서 편하고 부드럽게,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하는 어조가 된 것이죠.

 

1.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로 움직이는 바울(v2-5)

바울은 에베소에서 무척 힘든 일을 겪고 거의 쫓기다시피 해서 마케도니아로 건너갔습니다(19).? 이때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v5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쫓겨 왔으니 숨 돌릴 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전혀 쉴 틈이 없었고, 이곳에서도 에베소 못지않은 환란이 기다리고 있었고, 밖으로는 싸움이요, 안으로는 두려움과 실망감의 가득한 상황이죠.? 바울의 이런 절박하고 간 쪼리는, 한숨과 눈물 나는 상황과 이에 대한 그의 두려움, 실의에 빠진 마음을 접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많은 위로가 되네요.

. 바울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갈 것 같은 바울도 이렇게 지치고 낙심하고 좌절감에 싸일 때가 있구나. 또 그걸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어요그렇죠.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했던 것은 이런 엄청난 상황과 좌절감들 속에서 꾸준히 주님을 찾고 그분께 내 이런 절망스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새롭게 하는 시간을 계속하여 가져왔다는 걸 말하는 거죠.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긍정적 감정만 갖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때론 실망하고 절망하고 한숨 나오고 눈물 나오는 상황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그 모든 상황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때론 위로받고 격려 받고 해서 일어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거죠.

 

2. 그를 찾아온 데도, & 바울이 디도 편에 보내었던 편지가 가져온 결과와 바울의 기쁨(6~7, 13~16)

이런 상황에서 급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디도가 찾아온 거죠. 디도는 놀랍게도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그 혹독하게 사단 치는 편지에 상처받지 않고 도리어 마음 아파하고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게다가 바울을 내 쳤던 것을 마음 아파하고 지금은 그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할렐루야!!

바울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울지. 지금 죽을 만큼 힘든 상황과 마음을 단번에 깨뜨려버리고 힘이 불끈 솟아나는 걸 느끼는 거죠. 그래서 1~6장까지 쓴 편지에 대해 급반전 멘트를 날립니다. “너희는 마음을 넓게 가져서 앞서 내가 쓴 말들을 받았으면 좋겠어. 내가 야단치려고 한 건 아니었어. 내 마음이 얼마나 비장한지를 전했던 거지.”(2)라고 말이어요. 이어서 디도가 가져온 소식에 대한 기쁨을 맘껏 표현하였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동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고하는 노래가 떠오르네요. 주님의 한 몸 공동체가 되어간다는 건, 갈등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처럼 갈등하고, 책망 앞에 서기도 하고, 그래서 돌이켜 새롭게 회복하기도 하는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함께 성숙해가는 거죠. 우리가 한 몸으로 살아가는 부부관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주님의 몸으로 잘 성숙해가는 갈등과 극복이 되려면 그 나아가는 방향이 부척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도 같은 마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네요.

 

3. 야단맞음과 아픔(슬픔), 돌이킴과 회복에 대한 묵상 (8~16)

바울은 자신이 디도 편에 보낸 편지가 성도들을 마음 아프게 했더라도 후회하지 않노라고 이젠 당당하게 말합니다. 자신감 급상승 모드 인 거죠. 나아가 야단맞을 때, 찾아오는 이 아픔을 어떤 태도로 맞이하는가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엄청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걸 깊이 있게 얘기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는 길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 결과 회개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길로 돌이키는 거겠죠. 세 번 부인하고서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다음 대성통곡, 돌이킨 베드로가 대표적이죠.

다음은 영 아닌 길인데요, 세상 방식과 태도로 아픔을 대하는 경우지요. 가룟 유다처럼 후회하다 부정적 감정을 못 이겨 자살하고 말든지, 아니면 공동체를 이탈하고 뛰쳐나간다든지, 반대로 매우 공격적으로 된다든지. 뭐 이런 경우들인 거죠.

다행히, 또 감사하게도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했고 돌이켰고 새로운 회복과 성숙의 길로 가고 있네요. 하나님이 우리를 야단치지 않으면 우린 사생아라고 했잖아요. 참된 아버지는 자식을 훈육하시는 법. 하나님께서는 때론 성경 말씀을 통해서, 때론 다른 성도들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도 우리에게 야단치시고 훈육하시는데요,

이럴 때 야단맞을 당시에는 슬프고 아프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순적하게 믿고 따르면서 그 가운데 고민하고 자신을 바꿔 가면, 나중에의 의와 사랑과 평화라는 멋진 하나님나라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있는 아름다운 삶이 될 거라는 것을 믿고 오늘도 주님과 동행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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