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빡이 시인의 고백
눈 깜빡이 시인의 고백
  • 박주신
  • 승인 2018.11.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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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겐조, 감사는 밥이다, 선한청지기, 2014년
미즈노 겐조, 감사는 밥이다,  선한청지기, 2014년
미즈노 겐조, 감사는 밥이다, 선한청지기, 2014년

미즈노 겐조(1937-1984)는 일본 나가노현 사카키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11살이 되던 해까지 그는 너무나 밝고 쾌활한 소년이었습니다겐조가 11살 되던 해에 그 마을에 홍역이 돌았고, 병에 걸린 겐조는 목숨은 건졌지만, 고열로 인한 뇌성마비로 전신이 마비되고 언어 능력이 상실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게 된 겐조의 삶은 그야말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아픔의 시간이었습니다.

4년여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마을의 목사님이신 미야오 목사가 그 가정에 방문해서 어머니와 겐조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수시로 겐조의 집을 찾아와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겐조와 어머니는 어느덧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신앙생활이라고 해봐야 어머니가 겐조의 머리맡에서 성경을 읽어주는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은 할 수도 없었지만, 겐조의 가정은 복음에 젖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겐조가 쓰러진 지 15년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는 겐조에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겐조가 눈을 깜빡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라고 하고 싶을 때 눈을 깜빡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는 그 방법으로 겐조와 의사소통을 하기로 합니다일본어 알파벳인 50음 도표를 펼쳐놓고, 한 글자씩 어머니가 가리키면, 겐조가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겐조는 그 방법으로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눈 깜빡이 시인" 미즈노 겐조가 첫 시집을 출간하고 일주일쯤 지나서, 오랜 간병에 본인도 병약해지셨던 어머님이 소천하십니다(1975.3.2). 겐조에게는 그야말로 세상 그 자체와도 같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겐조의 시작(詩作)은 계속됩니다. 겐조의 남동생의 아내, 그러니까 겐조의 제수씨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감당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겐조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도 9년을 더 살면서 세 권의 시집을 더 출간합니다.

<눈과 귀>
뇌성마비로 /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 하나님이 눈과 귀만은 / 지켜 주셨다 / 말씀을 읽도록 / 말씀을 듣도록 / 말씀으로 / 구원하시기 위해

<힘들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힘들지 않았다면 /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테지 / 만약 많은 형제자매가 힘들지 않았다면 /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지 못했겠지 /
만약 주 되신 예수님이 고난 받지 않으셨다면 /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으셨겠지

총 네 권의 시집에는 전부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문인인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따뜻하면서도 눈물겨운 서문이 첨부되어있습니다. 이 네 권의 시집을 그가 사망하고 30년이 지난 뒤에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에 묶어서 출간하게 됩니다그 책이 바로 <감사는 밥이다>입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 사람에게 알려진 책이지만, 여전히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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