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 백성, 그러니까 그들 가운데서 나와라
너희는 내 백성, 그러니까 그들 가운데서 나와라
  • 하창완
  • 승인 2018.11.21 0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창완 목사의 큐티목소리나눔 - 고후6:14-7:1

팟방으로 직접 듣기

바울이 자신과 고린도교회 성도들과의 화해를 쭉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같이 매지 말라.”는 권면을 하니까 좀 당황스럽습니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또 관계회복 이야기로 돌아가거든요. 난데없이 끼어든 이야기긴 한데, 아마 바울이 자신의 삶의 태도와 하나님 안에서의 역설적 삶을 이야기하다보니 생각이 쭉 발전해서 너희도 이렇게 살아야하는 게 마땅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로 나아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뒤쪽 16절부터 묵상을 해야 앞의 권면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너희는 내 백성” : 다윗언약(삼하7:12-14)

하나님은 왕이 된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 자신은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성전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며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무척 감동하십니다. 그래서 진작부터 마음에 있던 다윗을 향한 약속을 이때 들려줍니다.

네가 죽으면 네 후손으로 왕위를 계속 이어가게 할 것이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말을 안 들으면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하듯 그에게 매를 때려서라도 나의 길을 가르쳐 따르도록 할 것이다.”(삼상7:12-14)

아버지-아들이 나라 전체로 확대되면 나는 너희 하나님, 너는 내 백성이 되죠. 그러고 보니, 이 약속은 시내산 앞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네요(19).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 약속을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에 들려줍니다. 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젖어있던 이방풍습에서 떠날 것을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37:27, 31:9, 52:11).

 

바울은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이곳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에 포로로 잡혀 있다가 예수님을 통해 해방되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 이방풍습과 종교로부터 떠나라.”

사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엄청 많이 이야기했던 것들도 바로 고린도 성도들이 지금까지 갖고 살던 가치관, 문화로부터 떠나지 않은 채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버틴 문제들이잖아요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은 말씀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다양한 비유를 들면서 이것을 강조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명에를 같이 매지 말라.

두 마리 소가 같이 멍에를 매고 밭을 가는데 한 마리는 이쪽으로 가고자하고 다른 한 마리는 다른 쪽으로 가고자하면 밭을 갈 수 없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나와 연합한 사람이 다른 방향(주로 자기중심적인 가치관, 돈이나 권력이 최고 등등)으로 가고자 하면 같이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불의를 좇는 사람과 동행하기 힘든 것도 당연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내일은 용도변경해서 불당이 될 수는 없는 법.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면에서는 우리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어찌 동시에 다른 신을 추구하며 사는 건 당치 않은 일입니다.

<주의> 바울의 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 우리끼리만 수도원을 이루고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 이 말씀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의 목적지를 분별하고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 아닐 때 따르지 않고 다른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말하는 거죠.

내 삶속에서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아가려고 가만 내 삶을 들여다보면, 정말 생각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네요. 우선, 일상에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 그 가운데 하나님나라의 의와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지 않는 수많은 가치들을 분별하고 따르지 않고 사는 것(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이 중요하다는 것이 떠오르네요. 분명한 떠남이 있어야 그다음 단계인 세상 속으로~’가 가능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게 될 거고, 그런 삶의 태도가 작금의 기독교가 이리 욕먹는 사태를 낳았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다음은요, ‘믿지 않는 자와 명에를 같이 매지 말라는 말씀을 가장 전통적으로 적용하는 부분인데요. 결혼상대를 고를 때 여러 가지 기준들을 갖고 고르겠지만 그중에서도 신앙의 일치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붙잡는 것도 이 말씀을 따르는 길이 되겠죠? 결혼이 하나님을 따라 사는 길에 얼마나 중요한 길인지를 생각하면 정말 선택을 잘해야 하는 건데요. 결혼은 나의 선택. 내가 어떤 기준을 갖고 선택하는지, 내 속에 숨겨진 은밀한 세계관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시간. 내 속에 나도 모른 채 담아왔던 가치관들을 점검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 주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길을 꽉 붙잡는 기회로 만들면 진짜 좋겠습니다.

 

이 모든 건 평소에 내가 얼마나 주님과 소통하며 살고 있는지와 깊은 관련이 있겠죠. 주님이 나를 바꿔 가시도록 나를 내어드리고 열린 태도로 말씀을 따르고자하는 자세도 매우 중요하겠고요. 매일매일 조그마하고 자잘한 일상을 주님 뜻에 따라서 선택하고 살아가다보면, 인생의 굵직한 결정을 할 때도 어느새 녹아있는 주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요? 암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베이스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아침입니다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