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도덕 종교 사회적 의미에 주목한 책
동물의 도덕 종교 사회적 의미에 주목한 책
  • 정한욱
  • 승인 2018.11.2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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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상, 중세동물지, 오롯, 2017년
작가 미상, 중세동물지,  오롯, 2017년
작가 미상, 중세동물지, 오롯, 2017년

<중세 동물지>는 10~15세기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동물지(Bestiarium)라는 장르의 문헌 중 13세기의 잉글랜드에서 제작된 <에버딘 필사본>을 번역한 책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걸어다니는 동물 ‧ 날아다니는 동물 ‧ 기어다니는 동물 ‧ 물에 사는 동물과 같이 동물을 다루는 장들 뿐 뿐 아니라 나무 ‧ 인간 ‧ 신비한 돌과 같은 장들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개별 항목들마다 삽화와 함께 특징을 서술하고 있는 구성은 일견 근대의 동물백과 내지는 잡학사전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중세 동물지는 근대 동물백과와 달리 동물의 해부학적 구조나 행동 양태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그 동물이 상징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적 ‧ 종교적 ‧ 사회적 의미”를 밝히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번역자는 이러한 동물지의 공통적 특징이 (1) 실재하는 동물뿐 아니라 용 ‧ 유니콘 ‧ 불사조 ‧ 그리핀처럼 상상의 존재들도 나온다는 것과 (2) 겉모습이나 행동 ‧ 습성 ‧ 본성뿐 아니라 이름의 기원과 관련된 신화나 다른 동물이나 인간과 맺는 관계 등이 그 동물의 ‘객관적’ 특성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 (3) 두 개의 단어나 개념, 두 가지 사물이나 사건 사이의 막연한 유사성이나 상응성에 기초해서 관계를 밝히면서 감춰진 진실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등이라고 말한다. 중세 동물지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생물인 동시에 초자연적인 것의 의도적인 재현이며, 자연은 신의 정신이 비추어지고 있는 거울이자 신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로 여겨진다. “성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자연은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동물지 작가의 말은 동물을 포함한 자연을 바라보는 중세인들의 사고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잘못된 과학 내지는 유사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강단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몇몇 설교자들의 모습이 반드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동물지의 특성은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원숭이(Simia)가 이성을 지닌 인간과 유사해(similitudo)보여서 그렇게 불리며 유일하게 거세되는 조류인 수탉(Gallus)의 이름은 거세된 남자를 일컫는 galli 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하늘을 날다 시신을 보면 내려와 그것을 먹는 독수리는 천상에 머물다 죽음에 휩싸인 인류를 보고 지상에 내려온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자신의 옆구리를 쪼아 벌려서 죽은 새끼들의 몸에 피를 부어 다시 살려낸다고 알려진 펠리컨 역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서술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징과 알레고리들이 동물지 작가 개인의 주관적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당대 사회에서 보편성과 구체성을 지니며 소통되었던 공적 지식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동물지는 중세의 설교 ‧ 조각 ‧ 속담 ‧ 문장 ‧ 우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 두루 활용되었으며, 어떤 장르보다도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끌고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러한 중세 동물지는 중세 유럽 사회의 정치적 ‧ 종교적 ‧ 도덕적 규범들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중요한 교화의 수단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근대인들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자연 이해와 대비되는 중세적 자연관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애서가들에게 필독서로 권할 만한 책은 아니나, 서구 중세문명이나 기독교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쯤 훓어볼 만 하다. 그리고 한 가지, 이 책을 읽다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잘못된 과학 내지는 유사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강단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몇몇 설교자들의 모습이 반드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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