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淫人의 집] 인물 중심의 서양 사상사 혹은 지성사
[書淫人의 집] 인물 중심의 서양 사상사 혹은 지성사
  • 정한욱
  • 승인 2018.11.30 2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 이학사, 2016년
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 이학사, 2016년

 

서양 철학사를 소개하는 전통적인 입문서를 넘어

쉽고 친절하게 풀어 쓴 인물 중심의 서양 사상사 혹은 지성사.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이에 가 지은 서양철학사를 다 읽었습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일반 대학생을 위한 교양 철학 교재로 써낸 철학사 입문서라고 합니다. 이 책이 나온 후 온라인상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만, 직접 읽어보니 과연 좋은 책이었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읽는 동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저자들이 밝힌 이 책의 서술기준은 자연권 문제와 과학 및 과학적 합리성의 확장에 주안점을 둔 서양철학사에 대한 입문입니다. 근대사회가 성취한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보편적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이 책을 일관하는 중요한 시각이라는 뜻입니다. 종교가 지배하던 세계(Christendom)였던 서구의 과거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세속화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갈 뿐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타당하다고 느낄 만한 기준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 시대에 전파된 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고 전 인구의 1/5 미만이 신봉하는 외래종교인 기독교가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단적인 자신들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것마저도 대한민국이 그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권민주주의그리고 보편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나라인 덕택이라고 해야겠지요?

이 책은 전통적인 철학사의 체제를 따라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로부터 현대의 거장인 위르겐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교양 수준에서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철학 사조와 철학자들을 시대 순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각 사조나 철학자들에 대해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내용만을 쉽고 친절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항목에 따라 소개의 분량이 충분하거나 약간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는 있지만 적어도 과하거나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각 철학자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소개하는 데 주력한 나머지 독자들의 이해력과 인내를 시험하는 일부 철학사 책들이나, 지나치게 요약하거나 가공한 나머지 원래 철학자의 체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말랑말랑한 소개서들과는 달리, 내용과 깊이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나 주장을 저 같은 비전공자도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철학사 책들이 좁은 의미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 및 각 사상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는 갈릴레이나 뉴턴에서부터 비코, 에드먼드 버크, 케인즈, 프로이트, 시몬 드 보부아르뿐 아니라 에밀 뒤르켐이나 막스 베버와 같은 고전 사회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고전적인 철학사 책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서구 지성사의 거장들의 이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또한 이 책은 특정 철학자나 사조가 서구 사상사의 어떤 계보의 어디쯤 있는지, 당대 역사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자연과학을 포함한 다른 학문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설명하는데도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함으로써 서양 철학사를 탐색하는 광대한 여정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서양 철학사를 소개하는 전통적인 입문서를 넘어 쉽고 친절하게 풀어 쓴 인물 중심의 서양 사상사 혹은 지성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고,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펼쳐볼 가치가 충분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