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지킨다는 것은
추수감사절을 지킨다는 것은
  • 이진영
  • 승인 2018.11.1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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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목사의 복빛교회 단상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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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한인 성도들에게는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동안 주류사회의 문화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력만큼이나 이 문화에 동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기독교계에 회자하는 추수감사절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 보자면 그곳에서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찾는 일이 좀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 출신 선교사들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답변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일각에서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구약에 있는 어떤 구체적인 절기들과 연결을 시켜서 이미 전통으로 자리 잡은 이 전통에 무게를 더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이 구약 성경에 있는 어떤 특정 절기 혹은 축제와 일치한다는 것은 다분히 억측입니다. 그런 방식의 설득은 오히려 율법적이고 문자적인 신앙의 태도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보아서, 구약 성경에 있는 절기를 우리가 그대로 지킨다고 해서, 그 절기를 지키는 신자의 이해와 태도가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자면 사실 우리 교회의 달력에는 구약의 모든 절기와 서양의 교회들이 지켜왔던 기념일들로 빼곡하게 들어차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는 말인데, 제가 혼란스러움만 더해드리는 것 같군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삶을 이어가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미국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며 특별한 감사의 기회로 삼는 것을 저는 어쨌든 매우 성경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절기가 성경의 어떤 절기와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라, 교회의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후대에 알려 전하는 것,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절기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추수감사절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주님의 손길이 이전의 땅에서 겪었던 고난과 부조리에서 건져주시길 소망하며 대양을 건너온 이들의 신앙고백이었고 감사와 예배였다는 점에서, 이민자인 우리들의 삶에도 큰 울림을 가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정말 절대적인 빈곤과 배고픔과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미 가족을 잃었고 또 새로운 환경과 싸워야 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바로 그 장소 그 시간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한복판임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 믿음과 깨달음을 그들은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들 역시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들이 처했던 절대적 약함과 빈곤의 자리를 우리 삶에서 복기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만 목격되고 그들의 소유가 되는 것처럼, 우리 마음 안에 우리가 처한 영적인 가난함과 나약함의 자리를 복기해 내고, 그 자리에 당장 임재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발견해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우리의 심령의 가난함을 고백하며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찬양할 때 세대를 이어온 감사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흘러내려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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