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수치심이 법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혐오와 수치심이 법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 박만희
  • 승인 2018.11.16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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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년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년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년

추상적이고 신화적인 가치에 바탕을 둔 혐오는 법의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내가 여성주의 법학자인 저자인 미국의 철학가 마사 너스바움(Martha Nussbaum)이 쓴 <혐오와 수치심>(마사 너스바움, 민음사, 2015)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법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다룬 책이다. 의도치 않게 법을 겉핥기라도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법이라는 게 생각보다 폭이 좁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이것은 무턱대고 법을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실제적인 위해로 인한 분노는 법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추상적이고 신화적인 가치에 바탕을 둔 혐오는 법의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해낸다. 이 말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사람들의 혐오 때문에 퀴어 퍼레이드를 금지하거나, 혐오 때문에 저지른 범죄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엉뚱하게도 내가 한 생각은, 저자가 분노와 혐오 중 어느 감정이 더 실제적인 위해에 관한 것인지를 가려낼수록, 법은 감정의 영역에 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막대한 '상실감''슬픔' 등에 대해서 법은 별말을 하지 않는다(물론 그 외 여러 감정에 대해서도). 그 감정들이 '피해'와 관련된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그런 중요하지 않은 감정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말이다. 그런 건 보통, '원래 삶이란 그런 거야'라는 말로 넘어가곤 한다. 법과 나란하게, 그런 영역을 다룰 무언가가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법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게 되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되오]" - 카프카의 <법 앞에서>의 한 대목

법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글쓴이 박만희는 신대원 졸업 후, 함께걷는교회를 개척하여 4년째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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