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미학을 배우라 손짓하는 길들
선택의 미학을 배우라 손짓하는 길들
  • 이영민
  • 승인 2018.11.1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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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이영민

내가 아마존 정글 길을 걸을 때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다. 마른 땅인데 가시가 많은 가장자리를 걸을까? 아니면 가시에는 안 찔리지만, 푹푹 발목이 빠지는 길 가운데 늪지대를 걸을까나의 인디오 멘토는 늘 마른 땅, 가장자리를 사뿐사뿐 걸었다. 나는 그냥 안내하는 인디오의 발자국만을 그대로 쫓아 걷기만 했다. 그의 발자국 안에 내 발을 담갔다. 그 덕분에 난 잘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존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은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오산천을 걸을 때도, 필봉산을 오를 때도, 이름 모를 시골길을 걸을 때도, 서울의 강북과 강남을 헤맬 때도 길들은 나에게 선택하라고 주문했다오산천을 걸을 때도 최대한 흙길을 밟고 걸으려 한다. 풀이 있는 곳과 잡초가 많은 곳을 선택해서 걷는다. 그러나 흙길을 찾기가 너무 어려운 도시에서의 내 바람은 늘 처절한 실패와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매봉산을 맨발로 걸을 때 느끼는 땅의 촉감들은 참 내 몸을 신나게 한다. 높은 길을 걸을 때 한 걸음 한 걸음 미지의 길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처럼 새로운 길을 만날 때는 엔도르핀이 돈다. 난 흙길을 좋아한다. 흙길 속에는 묘한 가르침과 만남과 함께 가는 친구들이 많다. 내 몸이 그들과 만나 같이 하나가 되어 뒹굴 때마다 내 몸은 신나서 춤을 춘다. 습관이 무섭지 않은가?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불쌍한 나무들과 건물 속에 갇혀버린 동식물들의 신음과 곡소리가 내 발을 멈추게 한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닌듯하다. 저들이 뭔 죄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오염되고 독 덩어리가 되어가는 지 안타깝다. 현란한 도시의 인위적인 색채들과 광기 어린 소음 속에서 도시의 길들은 점점 더 비인간적인 좀비들의 전용도로, 고속도로, 골목길, 지름길, 멸망의 길로 변해 버렸다.

아마존 정글 길, 안데스 산골짜기 길, 도시 중심가의 길, 빈민가의 길, 오솔길, 지름길, 바닷길, 하늘길. 내가 만났던 길들요.

떠나가는 가을에 손짓하며, 단풍 옷으로 단장한 아름다운 자태들을 조금만 더 뽐내라고 주문해본다. 내 맘을 모르는 듯, 미화원 아저씨는 매일 매일 청결을 유지한다고 단풍 옷을 벗겨낸다. 어느덧 다시 내가 걷는 그 길가에는 죽어가는 것들의 사투만이 덩그러니 남아 튕긴다. 창조주의 지혜를 버린 인간들의 최악의 선택은 도시인이 된 것이다가끔 발견되는 잡초들이 여기저기 갈라진 틈새들을 비집고 나와, 살려달라고 외쳐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냥 맘만 아프다. 다른 도시인들은 무심한 듯 그냥 걸고 또 걸으면서 속도전이란 빠름의 미학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도시 길의 가장자리도 내겐 지혜로운 선택이다. 흘러가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모든 인연의 옷자락을 느끼면서, 도시의 야경을 뒤로 한 채, 차가운 내 몸은 따뜻한 방바닥 잠자리를 갈망한다. 아마존 정글 길, 안데스 산골짜기 길, 도시 중심가의 길, 빈민가의 길, 오솔길, 지름길, 바닷길, 하늘길. 내가 만났던 길들은 오늘도 선택의 미학을 배우라고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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