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의책과일상] 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김영웅의책과일상] 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 김영웅
  • 승인 2018.11.25 0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년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년

많지 않은 분량에 훌륭한 가독성,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인품이 묻어나는 친절한 필체 덕분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막히지 않고 책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술술 읽혔다고 해서 이 책이 가볍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책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저의 공감을 넘어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우리가 바라는 세상 사이에 나있는, 그 동안 잘 보이지 않았거나 어쩌면 아예 보길 원하지 않았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이 땅에서 실질적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제가 속한 사회가 아픔이 생겨도 깊은 흉터 없이 치유될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저와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만큼 이 책은, 인간이라면 가져야 마땅할 보편적인 가치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후, 객관적인 자료를 모아 의미심장한 결과를 도출해내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해내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다시 점검하도록 도와주는, 한 마디로 이 시대의 훌륭한 자정작용 역할을 해내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은 이미 여러 곳에 실렸거나 연재되었던 짧은 글들의 모음집입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이면서 낱개로 있었던 글들이 각기 하나의 중요한 장기가 되어 살아있는 하나의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부제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만 봐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지요.

저자 김승섭 교수는 여러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사회역학자입니다. 사회적 원인으로 어떤 질병이 발생했다면, 아무래도 그 질병은 기득권 세력이 아닌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어두운 면에 달라붙어 기생하며 사회의 기득권을 누리면서 그 힘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탕진하는 자들에게 있어선, 서민들의 인권이나 복지 따위는 언제든지 희생해도 되는 가치일 뿐일 테니까요.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한을 마주하고 함께 하는 건 사회역학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김승섭 교수는 시대에 부응하는 학자로서 한국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 책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하는 셈이지요.

책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한국은 국가적, 사회적 재앙이나 재난에 대응, 대처하는 능력은 물론, 재앙과 재난 이후를 처리하는 능력까지도 현저하게 떨어져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되는 여러 사례에 대한 저자의 연구 결과와 해석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제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과연 이 나라에 희망이 남아 있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습니다. 비록 경제 성장을 단기간에 이룩해낸 국가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차별과 배제, 혐오와 낙인 찍기 등으로 심하게 얼룩져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똑같은 태양 아래이지만 사회 어두운 구석구석에서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약자들의 아픔을 직시하고 공감하고 경청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기도 했고, 생명을 담보로 하기도 했던 불의한 폭력 앞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이기도 했으며, 사회에 암묵적으로 만연한 승자독식, 약육강식 체제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억눌린 자들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소수자이기도 했고, 참사 이후의 생존자들과 그의 가족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때로는 그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민감한 질문까지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에게 부당하게 전가되었던 사회적 질병의 원인의 주인을 되찾아주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동안의 많은 과거 사례들에서와 같이 보통 역사에 남지 않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해두기 위해서는, 사실 그대로의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수 차례 거쳐왔기 때문에 이런 귀한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돌 같은 마음을 가진 저에게까지도 전달되어 저로 하여금 사회 참여자로서 살아야겠다는 구체적인 다짐까지도 하게 만들었답니다.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나의 눈과 귀를 열고 이웃들에게 더욱 사랑을 실천해야겠다.

무분별하게 부당한 희생을 당한 약자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원인이 사회구조적 이유라면, 이를 역으로 생각할 때, 그 사회공동체의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치유책이 될 것입니다. 저자는 심장병 발생이 유난히 적었던 로세토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292 페이지)"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295-296 페이지)" 저도 저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가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승섭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 (297 페이지)" 그렇습니다. 사회역학자인 저자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물으면서, 그 사회구조 이면에 놓인 원인의 원인을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공동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며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공동체, 약하고 가난한 자나 억눌리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이 구제 받고 신원 받는 공동체, 기득권을 내려놓고 서로 나누고 돕는 공동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참으로 인간다운 공동체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결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일개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는 이 책에서 꿈꾸는 정의로운 건강이 회복되는 공동체가 바로 구약이 끊임없이 말하는 공의와 정의가 행해지는 하나님나라와도 많이 닮았다는 점을 발견하며,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눈과 귀를 열고 이웃들에게 더욱 사랑을 실천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승섭 교수님. 약자들의 아픔을 눈물로 보게 해주시고 신앙을 넘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알게 해주셔서요. '나'를 넘어 '남'을 향하는 삶을 살도록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