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의책과일상 - 선한 영향력: 소금의 존재감 드러내기
김영웅의책과일상 - 선한 영향력: 소금의 존재감 드러내기
  • 김영웅
  • 승인 2018.11.2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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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선한 영향력, 선율, 2018년
김진수, 선한 영향력, 선율, 2018년

책을 덮고 조용히 내 가슴을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소금인가? 맛을 잃진 않았는가? 아니면 너무 강한 맛을 내어 음식 맛을 버리고 있진 않는가?” 책 중간 즈음에 소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알던 얘기지만 선한 영향력이라는 컨텍스트에서 읽었을 때 새롭게 다가왔다. 때론 몰랐던 것이 아닌 이미 알고 있던 것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추출해낼 때 갑절의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번이 그랬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음식은 맛을 내지 못한다. 반대로 소금이 강한 맛을 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싱거워도 짜도 음식은 제 맛을 낼 수 없다. 소금은 음식이 필요로 하는 만큼 적당히 들어가 음식 고유의 맛을 살려야 한다. 소금의 존재감은 음식에서 소금 맛을 내게 될 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소금 자체의 맛은 사라지고, 음식에 스며들어 음식과 하나가 되어 음식 본연의 맛을 내도록 도와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늘 소금은 음식 옆에 있으면서 음식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쓰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소금의 역할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선한 영향력'의 실체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외딴 산 속이 아닌 세상 가운데 존재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어두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빛이 필요하고, 음식이 부패하지 않고 제 맛을 내기 위해 소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현실에서의 빛과 소금들은 너무나도 다르다. 어두움과 함께 있어야 할 많은 빛들은 이미 자칭 빛들로 가득한 조명상사 안에 바글대고 있다. 빛들끼리의 교류에만 머물며,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적인 안위만을 간구한다. 어두움을 이기기 위해 갑이 되어 다스리고자 한다. 어두움은 빛이 피해야 할 대상이자 빛을 공격하는 대상으로 오인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어두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빛은 빛끼리 있다가 소멸된다. 선한 영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금은 어떠한가. 소금을 자처하여 썩어가는 음식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많은 경우 정체성이나 사명을 잃어버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반면, 음식 맛이 소금 맛이 될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어 선전하기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두 경우 모두 소금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된다. 자신이 소금임을 아는 정체성 인식, 음식을 부패하지 않고 제 맛을 내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명 인식, 이 두 가지를 모두 했다고 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럴싸한 이론적인 구호만으론 어림도 없다. 현실은 소금으로 하여금 음식 옆에 대기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음식에 뿌려지도록, 그래서 소금 맛은 사라져도 음식 맛이 살아날 수 있도록 요구한다.

선교지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인과 현지 상황과는 별 상관없이 마치 '따로국밥'처럼 섬으로 홀로 거룩하게 존재하거나, 현지인과 현지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온 진공 속 프로그램으로 선교를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안타까운 이 두 경우 모두 소금이 음식에 제대로 녹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실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는 음식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곁에서만 고결하게 서성이고 있는 경우가 되겠고, 후자는 음식 맛을 소금 맛으로 만들어버린 원맨쇼의 경우가 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소금은 소금으로 존재할 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소금은 음식에 스며들어 음식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소금은 음식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금의 숙명이자 존재감의 발현이다. 스며드는 것, 바로 선한 영향력의 시작이다.

소금은 소금으로 존재할 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저자인 김진수 장로는 자신을 선교사 모자를 쓰지 않은 선교사라고 말한다. 그는 신학교 배경이 없을 뿐더러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해당되는 후원 교회도 없고 파송되지도 않았다. 그는 캐나다 서부에 위치한 인디안 원주민들을 위하여 소금이 되기로 한 귀한 평신도 선교사다. 후원 교회나 후원금이 없이도 선교가 지속되는 이유는 그가 자비로 시작한 비지니스 덕분이다. 그는 이미 창업에 성공해본 유경험자다. 실수나 실패를 포함한 과거의 모든 점들이 이어져 하나의 선이 만들어지는 기적을 맛보고 있는 자이며, 그 과정 자체가 곧 선교라고 믿는 자다. 그 선들은 머지않아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말하는 비지니스 선교는 ‘선교로써의 비지니스 (BAM: business as mission)’이다. 기존에 있던 ‘선교를 위한 비지니스 (BFM: business for mission)’가 아니다. 둘은 큰 차이가 있다. BFM의 경우, 비지니스는 선교와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 비지니스에서 얻어낸 결과물, 즉 물질적인 열매가 선교를 위해 쓰여지는 구조다. BAM에서는 비지니스의 결과 뿐 아니라 모든 시작과 과정 자체가 선교다. 소금으로 비유를 하자면, BFM은 소금이 들어가 만들어낸 음식으로 얻은 수입으로 선교를 하는 것이고, BAM의 경우는 소금이 음식 옆에 내팽겨치지 않고 음식의 신뢰를 얻으며 대기할 수 있게 되는 과정부터 서서히 음식에 스며들어가는 과정 모두가 선교와 동격이 된다.

언젠가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묵상을 해본 적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을 향한 과정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결론이었다. 이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메시지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궈낸 어떤 큰 성과가 필요하신 분도 아닐 뿐더러 그런 것들보단 우리가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더 큰 관심이 있으시다고 믿는다. 우리의 목적 성취도 그분에게는 동일한 과정일 뿐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며 사는 삶은 어떤 특정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는 이유도 된다.

나도 소금으로써 녹아들고 스며들길 원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정직하게 신뢰를 얻으며 음식을 위해 기꺼이 쓰임받는 하나의 소금이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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