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의책과일상] 묵시와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다
[김영웅의책과일상] 묵시와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다
  • 김영웅
  • 승인 2018.11.26 0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진 피터슨,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IVP, 2002
유진 피터슨,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IVP, 2002

때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압축성과 설명할 수 없는 깊음이 진득하게 글에 배어있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생각의 묵직한 파편들을 그대로 떠안은 채 그저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한 챕터 한 챕터를 천천히 읽어오면서 느꼈던 감동과 깨달음이 여전히 범람하여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할 말을 잃고야 만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을 유진 피터슨이라는 신뢰할만한 눈을 통해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비록 아직까진 요한계시록에 대해 내게 먼저 들어간 잘못된 편견과 착각들이 바른 이해보다 내 안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 책은 내게 그것들을 무력화시키고 해방시켜주는 소중한 역할을 감당해주었다. 마침내 드러날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과 함께 과거와 미래가 현재로 귀결되는 종말론적인 신앙관을 견지하기로 마음을 다잡는 하나의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유진 피터슨은 요한계시록이 우리를 각성시켜주는 힘을 가진다고 말한다. 지식을 얻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상상력을 소생시키고자 읽는 책이라고 말한다. 사도 요한의 묵시는 시인의 언어를 구사하여 오래되어서 무뎌진 진리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 진리를 진리답게 우리에게 다시 각인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새롭게 깨어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요한계시록의 강해가 아닌 저자의 묵상이자 강의록이다. 그러기에 요한계시록이 무슨 내용인지 조목조목 풀어주는 방식이 아닌, 요한계시록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일상의 구체적인 언어를 통하여 풀어주는 방식을 취한다. 요한계시록 본문의 순서를 따라가되, 그 본문들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해석하여준다. 유진 피터슨은 현실에 기꺼이 몸담고 있으면서 현실을 품고 현실을 리드하는 영성의 소유자임이 틀림없다.

사도 요한을 신학자이자 시인이자 목회자로 해석하여 소개하는 대목에서 나는 동일한 해석을 유진 피터슨에게도 적용되어야 함을 간파했다. 그 역시 하나님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진지하게 연구하는 신학자이고, 철학자의 조심성과 도덕주의자의 진지함을 충분히 넘어서는 호탕함과 대담성을 겸비하여 능숙하고 정확하게 상상의 언어를 사용하기에 부족함 없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시인이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 생활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된다는 확신을 품고 성심껏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과 기쁘게 대화하는 목회자이다. 덕분에 나는 그를 통해, 내게는 무겁고 무섭기도 했던 요한의 묵시가 내가 속한 현실 속으로 과감히 끌어들여지는 것을 감사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예배가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말 뒤에 숨어

은밀히 영지주의적인 안위만을 구해서도 안될 것이다.

여러 챕터에 걸쳐 계속해서 강조되어지는 단어 중 하나는 '예배'였다. 예배는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에 몰입하는 행위이자, 우리의 방향을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립하게 해주는 행위이다. 그래서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중심적 행위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현실을 등한시하고 영과 육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된 세계에서의 예배는 인간의 사적인 유익처와 도피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예배를 비활동적이며 세상사에 비추어 볼 때 부조리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예배를 그만두고 세상에 무언가 즉각적인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예배를 그만두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서 인간이 행하는 일로 초점을 바꾸어 예배를 변질시키는 사람들 역시, 삶의 방향을 잃었다는 측면에선 마찬가지다.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삶이 예배라는 말을 오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시간을 소멸해서도 안되며, 예배가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말 뒤에 숨어 은밀히 영지주의적인 안위만을 구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배하는 자이며, 하나님이 거룩하셨듯 거룩하도록 일상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일 것이다.

또한 원제목, 'Reversed thunder (역전된 천둥: 기도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때 일어났던, 요한계시록 8장에 기록된, 하늘의 침묵의 이미지가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말을 경청하시는 하나님이 언제나 동일하신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경이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보시고 들으시고 직접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행동과 말이 바로 그 하나님으로부터 존엄성을 얻고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 창조주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믿는다. 온 맘 다해 찬양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Revelation 1: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