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이방인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고독한 이방인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 김영웅
  • 승인 2018.07.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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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문
김동문

고독한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인정의 가치는 퇴색된다.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도 언제나 고립되어있다. 결코 물과 섞일 수 없는 기름처럼 그들은 늘 겉돌며 외로움을 느낀다. 그들의 눈은 도대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처음부터 기름이었는지, 점점 기름이 되어갔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한 가지는, 한때 그들 역시 주류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욕구를 가졌었다는 점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좀 더 강한 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했고, 약한 자들과의 관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멀리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러한 욕구가 순수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러자 오히려 강한 반발심이 생겨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했던 목적지가 어느 순간 가장 피해야 할 장소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괴리감은 그들의 내면세계를 감금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류 사회를 오랜 시간에 걸쳐 동경했기에 그 세상을 잘 알았다. 개별적인 능력이나 결과들만을 비교하면 주류에 속한 이들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명백히 주류가 아니었다. 이 사실은 결국 그들을 고독한 이방인으로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이방인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동의 선을 위한답시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생각이 깨이고 열린 분들이 서로 모여 네트워크나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던 기관들이 본질을 벗어났기 때문에 대안적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난 이러한 공동체들, 즉 본질을 다시 찾으려는 숭고한 뜻을 가지고 모이는 사람들에게서도 왠지 모를 단단한 껍질이 느껴진다. 모임을 시작한 몇몇 사람들보다는 그들에 의해 가입하게 되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런 느낌은 더욱 강하다. 스스로는 아마도 자기가 이런 훌륭한 대안적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또 하나의 섬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 자랑스러움은 독이 된다. 자부심이 나쁘진 않지만, 그것이 개인 수준이 아닌 공동체 수준에서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기존의 특권 세력을 대항해서 생겨난 대안 공동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본질이 퇴색되어 모습만 다를 뿐, 또 하나의 특권 세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혁이 힘을 얻을 때 보수가 되는 이유와도 같다. 참다운 대안이 되기 위해선 언제나 부지런하게 개혁되어야 한다.

고독한 이방인이 사회에 많아지고 있다는 건 춘추전국시대와도 같다. 재야에는 고수들이 많지만, 나라는 형편없는 꼴인 상황인 것이다. 고수들이 재야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아닌 그들을 고르게 등용하여 고독한 이방인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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