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연구를 한층 깊이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좋은 책
구약 연구를 한층 깊이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좋은 책
  • 정한욱
  • 승인 2018.07.0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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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이해 (버나드 앤더슨 지음, 크리스챤다이제스트 펴냄), 고대 근동 문학 선집 (제임스 프리처드 편집, CLC 펴냄)
버나드 W. 앤더슨, 구약성서이해(제4개정판), 크리스챤다이제스트(CH북스), 1994년

버나드 앤더슨의 <구약성서 이해>를 마침내 다 읽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 성서라고 불리는 히브리인들의 성경에 대한 연구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하기 위해 .... 모세 시대의 고대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출발로부터 일명 마카베오 시기라고 불리는 후기 성서 유대교 시대에 피어난 문학까지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따라 성서신학, 문학비평, 고고학적 연구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을 한데 엮어내는 것

한 마디로 구약성서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표준적인 비평학의 견해를 깔끔하게 집약해 하나의 멋진 이야기로 엮어 낸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구약성서를 근대적 의미의 객관적 역사서술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다양한 역사적 신학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전승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탄생시킨 신앙고백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출애굽에서 마카베오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순서대로 서술해 가면서 역사서의 경우는 해당 역사시기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예언서나 지혜서는 각 책의 저술연대에 해당하는 시대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책은 성서 본문 중 이스라엘의 진정한 역사적출발로 간주되는 출애굽 이야기를 맨 처음으로 다루고 있고, 신명기에 대한 내용은 신명기가 다시 발견된또는 새로 편집된시기로 추정되는 요시야 개혁을 다루는 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흔히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간주되는 원역사와 족장사를 담고 있는 창세기는 제사장계 역사서의 최종 편집 연대로 여겨지는 포로기를 다루는 책의 말미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의 경우는 저술 시기에 따라 제1 이사야를 왕정시대에, 2·3 이사야는 포로시대에 각각 분리해 다루고 있으며, 마카베오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다니엘서에 대한 설명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책과 비슷한 체계와 서술을 가진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 이스라엘 역사의 대장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 흡인력 강한 역사 이야기책에 가깝습니다. 다양한 도표를 통한 깔끔한 요약이 돋보이고 성서 해설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구약성서 이해>, 좀 더 개론스럽고’ ‘교과서스러운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History’ 가 아닌 ‘Geschichite’, ‘역사가 아닌 고백에 좀 더 강조점을 두는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와 이스라엘 역사를 바라보고 있지만, 족장사나 가나안 정복같이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성서 진술들의 역사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지는 않으며 각 단원의 마지막을 신약성서 및 교회 공동체와의 연속성과 관련된 설명으로 마치는 등, 결코 급진적이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살펴 본 신앙고백으로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제가 읽어왔던 어떤 보수적인 개론서나 역사서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은혜로웠습니다.

제임스 B. 프리처드, 고대 근동 문학 선집, CLC, 2016년
제임스 B. 프리처드, 고대 근동 문학 선집, CLC, 2016년

젊은 시절부터 구약을 공부하면서 첫 애인(?)이라 할 수 있는 F. 브루스의 <구약사>에서 시작해 전문적 연구서는 아니지만 구약성서 읽기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었던 <함께 읽는 구약성서>, 오랫동안 구약공부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앤드류 힐과 존 월튼의 <구약개론>, 너무 재밌어서 밤새는 줄 모르고 열심히 탐독했던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 고대 근동 종교사의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접근하는 허셜 생크스의 <고대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꽤 여러 종류의 소개서들과 만나 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만난 이 두꺼운 책 앞에서 느꼈던 감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견고한 로마네스크 대성당을 닮은 고전적인 조직신학서를 접했을 때와 같은 압도적인 숭고와 경외보다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미켈란젤로의 거대한 인물 조각상 앞에 섰을 때 느낄 법한 경탄스러운 아름다움의 황홀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 책이 이뤄 낸 구약 이스라엘 역사의 한 아름다운 재구성이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100% 부합하거나 지금까지도 학계의 정설일 확률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쯤은 여기저기서 이 책의 설명에 위협을 가할 다양한 반론들이 나와 있겠지요. 그러나 이 책의 '아름다움'에 취한 저는 여기가 좋사오니를 목 놓아 외쳤던 변화산 위의 제자들처럼, 자꾸 이 탁월한 성취의 봉우리 위에 잠시만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집니다.

이 책의 각주에는 폰 라트, 마르틴 노트, 롤랑 드 보, 조지 맨델홀, 브레버드 차일즈, 노만 갓월드, 존 브라이트, 아브라함 헤셸, 필리스 트리블과 같은 쟁쟁한 거장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각주에 그런 이름들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나 저서는 바로 “Prichard, Ancient Near East Texts", 바로 CLC에서 번역되어 출간한 <고대 근동 문학 선집>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아마르나 서한"까지 말로만 듣던 성서와 관련된 중요한 고대 근동 문헌들을 한 권에 모아 놓은 두꺼운 책입니다.

그 유명한 하피루가 등장하는 아마르나 서한과 세련된 가나안 종교의 신화를 담고 있는 라스 샤므라 문헌같이 말로만 듣던 여러 문헌들을 직접 확인해가며 <구약성서 이해>를 읽어가는 것은 구약공부를 한층 깊이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이라면 반드시 동반자로 삼으시길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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