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아니다. 실망과 충격이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실망과 충격이다.
  • 최건우
  • 승인 2017.11.1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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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명성교회는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져있다.
명성교회 김산환목사에게서 김하나 목사로,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JTBC
명성교회, 김삼환목사가 김하나목사에게,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 JTBC

나는 명성교회에서 성장하고 많은 은혜와 영적 훈련을 받아온 어린 학생, 청년이었으며, 지금은 목사다. 엊그제 명성교회 세습반대 온라인 성명서에 서명을 하면서, 솔직히 약간 겁이 났다. 명성교회의 사랑을 받아왔고 여전히 명성교회를 사랑하는 모교(母敎)로 여기는 목사가 명성교회를 향해 돌을 던진다는 것이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성명서에 서명한 본 교단 목회자들 중에는 내가 아는 이름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마찬가지로 이 좁은 교계에서 어차피 내 이름 석 자는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명성교회와 명성교회에 속한 스승, 선후배, 동료들에게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약간의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의 앞선 용기에 힘입어 부끄러운 내 이름 석 자를 적었다.

1029일 종교개혁주일에, 나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관한 설교를 했다.(왕하 18:1-12) 히스기야는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부수고 느후스단, 즉 놋 조각이라고 일컬었다. 어느 누가 감히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며, 그의 물건에 손을 댈 수 있었겠는가? 놋 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여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며 소위 은혜의 매개체였다.(21:8,9)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작품이자 은혜의 매개체가 바로 명성교회다. 정확히 10년 전, 첫 전도사 사역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명성교회를 떠나기까지, 나는 청소년 시절부터 나름대로 열심히 명성교회에 출석했고, 여러 가지 봉사로 교회를 섬겼다. 대학과 신대원 시절까지 종종 명성교회의 장학금을 받았으며, 내가 아는 바 김삼환 목사님께서 사비로 나를 도와주신 적도 있다. 또한 명성교회가 만든 크리스천 글로벌리더 양성기관을 통하여 특별한 혜택과 훈련도 많이 받았다. 명성교회를 통하여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영적 지경은 넓어졌고, 지금은 이렇게 목사까지 되었다. 분명 명성교회는 나에게 은혜의 매개체였다.

김삼환 목사, 십자가를 지는 일을 말하다.
김삼환목사, "... 십자가...."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JTBC

그런데 나는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그 은혜의 매개체를 느후스단이라고 부르고 싶다. 은혜의 매개체는 매개체일 뿐이지 은혜의 본질이 아니다. 교회는 은혜의 매개체일 뿐 은혜의 근원이나 실체가 아니다. 이 시대의 느후스단이 무엇인가? 성경보다 높아진 교회의 권위다. 하나님보다 높아진 목회자의 권위다. 언젠가부터 명성교회의 권위는 성경보다 높아졌고, 김삼환 목사의 권위는 마치 하나님의 권위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의 설교와 판단은 곧 하나님의 뜻이었고, 명성교회의 모든 일은 곧 하나님의 선한 일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이번 불법적 교회세습 강행마저도.

우상은 결코 우상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비 진리는 결코 비 진리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여호와 신앙이라는 형식 안에 스며든 바알과 아세라 등의 우상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 비슷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신앙 비슷한 것은 신앙이 아니며, 진리 비슷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알고 섬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섬겼다. 심지어 그것을 제사장 아론이 주도했고 모든 이들은 속았다.(32:1-6) 집단사고의 오류였다.

지금 명성교회는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져있다. 머슴목회를 자처하던 김삼환 목사는 어느새 종을 가장한 교회의 주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포장된 자신의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고 세밀하게 조각하고 디자인하고 있었다.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고 사회적으로 선한 사업들을 하는 것이 왜 잘못이겠는가? 다만 문제는 은퇴 이후에도 그것을 본인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것이며, 세습을 통해 아들 목사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옥새를 꽉 쥐고 하나님의 왕좌에 사람이 올라앉은 격이다. 그는 스스로 속고 있었으며, 이에 대다수의 성도들은 그에게 속거나 침묵해왔고 하나님 신앙이라는 형식 안에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에 대한 거룩한 존경심과 신앙심을 무럭무럭 키워왔다. 다만, 자기도 모르게 집단사고의 희생양들이 되어버린 순수한 신앙을 가진 성도님들과, 입이 있으나 밥줄 때문에 감히 옳은 말을 꺼내지 못하는 교역자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

명성교회의 세습 강행, 이것은 분명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사건이다! 어둠이 짙어야 빛이 더욱 밝게 보이듯, 명성교회의 어둠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더욱 빛나게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정말 루터가 원하는 이 시대의 종교개혁은 무엇일까? 올 한해 우리는 루터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했고, 루터를 기념하며 수많은 세미나와 학회를 개최하고, 심지어 쌈짓돈을 모아 종교개혁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루터가 정말 기뻐했을까? 루터가 원한 것은 우리가 루터를 기억하며 온갖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루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루터가 유일하게 따랐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목회자를 존경하고 따를 수 있지만, 그의 실책까지 따라가서는 안 되며, 오직 말씀의 길을 걸어갔던 부분만을 따라야 한다. 다윗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며 메시야의 예표이지만, 그 또한 영적으로 타락하고 실수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목회자를 포함한 사람은 누구나 그저 불완전한 죄인이며 하나님이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그런데 히스기야 시대의 모세의 놋 뱀 숭배는 루터 당시 성인과 성 유물 숭배로 나타났다. 지금 명성교회에서는 목회자 숭배와 교회 숭배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미묘하기 때문에 얼핏 보아 절대 알아차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할 절대적 가치는 무엇인가? 은혜의 매개체가 아니라 은혜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다. 은혜의 매개체가 은혜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목회자와 교회의 권위가 더 높아서는 안 된다. 명성교회에서는 말로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최고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모든 지향점이 미묘하게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의 권위를 높이는 데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일찍이 히스기야는 과감히 은혜의 매개체인 놋 뱀을 부수고 그것을 느후스단이라고 일컬었던 것 아닌가? 놋 조각이다. 교회와 목회자가 스스로의 권위와 권력에 매몰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가린다면 결국 놋 조각일 뿐이다.

혹시 지금 명성교회 상당수의 교인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온 거대한 명성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온갖 선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 마음에 안정과 위안을 주는 면죄부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김삼환 목사를 통해서 은혜로운 말씀을 듣는 것이 우리의 신앙과 구원을 보장하는가? 혹시라도 우리는 특정 목회자의 경건한 언어와 행동에 시야가 가리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믿음은 한 치의 오차가 없어야 하며,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이어야 진짜 믿음이다. 종교개혁의 본질은 말 그대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다. 이외에는 모두 느후스단이다. 놋 조각이다! 히스기야가 과감히 부숴버린 모세의 놋 뱀일 뿐이다.

나는 명성교회가 느후스단으로 취급당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모교를 사랑하는 이 불효자의 마음이다.

 

글쓴이 최건우 목사는, 명성교회 출신으로 지금은 대전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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