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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친일매국노, 앞잡이를 뜻하는 토왜(土倭)에서 비롯
[팩트체크] '토착 왜구'의 기원은?
2019. 03. 21 by 김동문
KBS [뉴스줌인](2019.03.18)

토착왜구논쟁이 벌어집니다. 토착왜구 표현의 유래는 어디일까요토착왜구의 뜻을 담은 표현은 토왜입니다'토왜'의 기원은 언제 누구였을까요? 이를 두고 방송과 온라인에서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일단 확인되는 게 일제강점기 이태현 선생이 쓴 정암사고라는 책에서 비슷한 말이 발견됩니다. 일종의 개인 산문집인데요, 왜놈들을 꾸짖는다는 부분을 보면, 비슷한 말이 발견됩니다. '토왜'란 말이 나오는데요. 흙토자를 쓰고 있죠? 역시 친일부역자로 해석이 되고, 이른바 토착왜구란 말과 가장 가까운 뜻으로 보입니다." - KBS [뉴스줌인](2019.03.18)

 

토왜, 정암 이태현 선생의 '정암사고'에서?

KBS방송 내용을 짚어봅니다. 이태현 선생의 유고문집 정암사고에 실린 글에서 토왜가 등장하는 것은, '수애십조죄문'(數倭十條罪文) 중 10번째 항목입니다.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 열째, 우리나라 토왜의 죄가 오랑캐보다 더욱 더 크다. 천지가 뒤바뀌었다. 윤리 강상이 좀먹어 없어졌다. 국모를 위해했다. 임금이 치욕을 당하고 충신과 현인이 화를 입었다. 종묘 사직이 망해버렸다. 모두가 창귀(倀鬼) 토왜(土倭) 무리가 오랑캐를 끌어들여 지휘하고 악을 퍼뜨리고 윤리를 멸한 죄를 저질렀다. 후세에 임금되는 이는 반드시 이 토왜의 죄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정확하게 '수애십조죄문'이나 '정암사고'에서 토애를 언급한 글의 시점은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정암 이태현 선생은 1910년생입니다. 1942년에 항일자결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정암선생의 출생년도인 1910년 이전에 이미 토왜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는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토왜를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人種)’으로 규정하고, 토왜를 다음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1) 뜬구름같은 영화를 얻고자 일본과 이런저런 조약을 체결하고 그 틈에서 몰래 사익을 얻는 자.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암암리에 흉계를 숨기고 터무니없는 말로 일본을 위해 선동하는 자. 일본의 침략 행위와 내정 간섭을 지지한 정치인, 언론인이 이에 해당합니다(3) 일본군에 의지하여 각 지방에 출몰하며 남의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자. 친일단체 일진회 회원들이 이에 해당합니다(4) 저들의 왜구 짓에 대해 원망하는 기색을 드러내면 온갖 거짓말을 날조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독을 퍼뜨리는 자. 토왜들을 지지하고 애국자들을 모험하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시정잡배가 이에 해당합니다.

대한매일신보, 토왜천지? 관련 사실을 짚어보겠습니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국한문, 1910.06.22)에 "土倭天地제하에 실린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 안의 내용중 일부는 현재의 한글 표기법으로 옮겼습니다.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 국한문, 1910.06.22)

土倭天地 ▲獰風猛雨此天地에 許多人種化出하니 土倭種類遍滿하야 蠧國病民통歎일셰 ▲國家事는 何如턴지 一時浮榮圖得할졔 此約彼條藉功하며 別般運動密勿하니 이것도 土倭 ▲韓面日腸相雜하니 倀鬼輩의 行色이라 何等聲明煽唱인고 暗裏凶計舞弄하니 이것도 土倭 ▲兵力하에 依庇하야 各地方에 出沒하며 奪財겁奸恣行하니 指使者의 惡行이라 이것도 土倭 ▲分憂責을 自負하고 鼻息下에 聽令할졔 無辜良民鞭撲하야 千인坑塹陷落하니 이것도 土倭 ▲幾分月銀摘食할졔 睚眦怨을 欲報하야 搆虛날誣秘探中에 流毒生靈慘虐하니 이것도 土倭 ▲殊方語學稍解하면 一爪牙를 甘作하고 債錢으로 作奸하야 奪人家産無餘하니 이것도 土倭

국문 대한매일신보(1910.06.22)는 시사만평에 아래와 같이 보도하였습니다.

대한매일신보(국문, 1910.06.22)

'토왜' 표현은 19010년 이전

그런데 이보다 앞선 시점에 이미 '토왜'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국문판과 국한문 혼용판, 19080405일자입니다. 국한문 혼용판에는, 淸潔方針 제하의 글에 토왜가 등장합니다일진회(一進會)를 비판하며 토왜(土倭)로 부르고 있습니다.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 국한문, 1908년 04월 05일)

壹團厲氣凝聚하야 一進會가 生出이라 大和魂魄換着하니 土倭之稱難免이라 自衛團의 兼毒으로 傳染病이 熾盛하니뎌 心腸을 淸潔하지

같은 해에 발행한 대한매일신보(국문, 19081126일)는 시사평론에 "나라일을 근심키로 깊은밤에 잠 안오니 유지사" 제하의 글에서 토왜를 언급합니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1908년 11월 26일)

같은 날짜의 국한문 혼용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 1908.11.26) 는 "巡撿叢寃"(순검총원), 제하의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여, 일(본인종놈이라 비난받고, 일인경찰에게 차별당하고, 백성에게 무시당하고, 토왜라 불려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순경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아무래도 1905년 11월 을사녹약 이후의 경성을 중심으로 한 풍경으로 보입니다.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 국한문, 1908.11.26) 

巡撿叢寃 나라위해 祈禱次淸冷澗水차져가셔 沐浴하고오는길에어느 坊曲지냇더니 長吁短嘆酬酌소래 悽凉慷慨爛熳키로 依杖佇立트러보니 出番巡檢모여안자 各自身勢恨嘆일네 ▲한 巡檢의하는말이늙은 父母칩다하고 어린子息밥달난들 分錢變通어대잇나 할수업셔 巡檢노릇 七圜五刻목을매고 晝夜勤務하노라니 이내 心事됴흘손가 목구녕이 怨讎로다 ▲또한 巡檢하는말이 巡檢노릇 말을마소 冬至셧달 雪寒風四隣雞聲디동치듯 全體手足곳어올제 이 身勢랄 생각하면 하나님아마옵소셔 求生之心바아업데 목구녕이 怨讎로다 ▲또한  巡檢하는말이 日人이나 韓人이나 警察服役壹般인대 彼人들의 月俸額吾輩月銀比較하不公平姑舍하고그 에다 虐待하니 죽어몰을 일이지만 목구녕이 怨讎로다 ▲또한 巡檢하는말이 日巡査同巡할指揮대로아니하면 日巡査恐喝하指揮대로하고보면 不知裏許人民들은 甚於倭種稱怨인들 我心非襪不飜이라 목구녕이 怨讎로다 ▲또한 巡査하는말이 巡檢中無賴輩日巡査依勢하行悖民間或有하人民指目免할손가 左思右量하고보면 服裝軍刀脫去心無時不出하것마는 목구녕이 怨讎로다 ▲또한 巡檢하는말이 모진목슘 圖生코져 巡檢노릇할지언졍 憤愾心壹般인대 某坊曲巡行할兒孩들이 指目하日人죵놈간다하니 汗出沾背하지마는 목구녕이 怨讎로다 ▲또한 巡檢하는말이 此言彼言쓸대잇나 國權墮落恨歎일세 他國갓치 富强하自主獨立하량이면 日人干涉업슬지며 土倭소래듯겟는盡心竭力勤務하야 우리 義務하다보셰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국한문, 1910.06.21) "筆下尖峰" 제하의 기사입니다.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 국한문, 1910.06.21)

筆下尖峰 ▲燕歧郡에셔는 何許雜類가 靑年의게 日債를 得給하고 雜技로 誘引하야 家産을들어먹는다지우리나라는 土倭까닭의살슈업셔 ▲寺洞自轉車舖에셔 日人賊漢이 自轉車一輛을 貰得逃走하엿다지 이것은 日賊中의 도쥐 盜賊놈 ▲南中의는 治道로 亂離가낫다지 振威통북개에셔 京畿道觀察使와 振威郡守가 躬檢治道하는대 現方農時를 當하야 附近農民을 募集하고 多日赴役케하며 新作路傍에 黃熟는 麥田과 未移한 秧坂을 一幷埋築하매 該田夫等이 命脉을 已失함으로 呼天통哭하야 景色이 慾慘하거늘 所謂觀察使는 此를 不恤하고 該田夫等을 招集說明하기를 莫重한 治道工役에 汝等의 麥田秧坂을엇지 顧念하리오 如此呼哭은 民習에 可통이라한즉 該田夫等이 呼哭不已하매 觀察使가 日人役夫를 指揮하야 鞭撲을 加하엿다니 振威의 民人은 何辜오 此등의 土倭種類까닭의 사람살수잇나 ▲總理가 溫陽에 下去하매 京鄕間問病者가 畓至하는 故로 車夫와 馬夫등이 行李運搬에 意外雇金을 多得하엿다니 該地役夫는 総理가 幾拾年을 溫泉에셔 治療하기를바라갯지 可謂幸人之不幸이로고 ▲日人들이 行商次로 渡韓多年에 韓語만 粗解하면 各地方學校의 敎師로 自任한 者ㅣ 二百餘名에 達하엿스니 市街로 行商爲業하는 者가엇지 學識이잇스리오 學部에셔 各道에 발訓하고 各學교日敎師의 身分을 調査한다지인제야 敎育이잘될까우리나라사람이얼임이업셔 日人이라하면 不計高下하고 別學識이잇는줄로알지

대한매일신보(국한문, 1910.06.21)"연기군에서는 어떤 잡류가 청년들에게 일채를 얻어주고"  제하의 기사를 올립니다. 물론 위의 국한문 혼용판의 같은 내용의 한글판 기사입니다.

대한매일신보(국문, 1910.06.21)

 

해방정국에서도 '토왜' 관용어로 사용

해방 정국에서도 '토왜'는 친일파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東光新聞(동광신문19470402일)은 "親日派와 그 處罰問題"(친일파와 그 처벌문제) 연재글에서, "汎博土倭規定千不當萬不當事"(범박한 토왜규정은 천부당만부당 - 너무 폭넓게 친일파를 규정하는 것은 천번 만번 옳지 않다) 제하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친일파 규정을 너무 넓게 잡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東光新聞(동광신문, 1947년 04월 02일)

 

토착왜구 논쟁은?

이상의 기사에서 '토왜'는 일본 앞잡이, 친일파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토왜'가 '토착왜구'로 풀어서 다시 사용되는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이상의 기사에서 '토왜'는 일본 앞잡이, 친일파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토왜''토착왜구'로 풀어서 다시 사용되는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토왜 표현은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이 언급한 1910년 대한매일신보 보도 보다 앞선 시점, 최소한 19084월 이전부터 관용어로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KBS 방송 보도 내용은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문득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가짜왜구가 떠오릅니다. '가왜(假倭)'로 불렀습니다. "왜구(倭寇)를 가장하여 중국이나 조선 해변을 약탈하던 가짜 왜구(倭寇). 당시 해변에 살던 불한당이 간혹 무리를 지어 가왜구(假倭寇) 행세"를 한 이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인인척 꾸며대던 가짜조선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 역사 속에 존재하던 가왜, 일본 본토의 왜구를 뜻하는 본토왜구, 그리고 토왜(토착) 그리고 최근의 토착왜구 논쟁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 것일까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친일, 친일반민족행위에 얽힌 평가와 청산이 마무리되지 않은 후유증이 아직도 한국 사회에 가득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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