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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는 것이 아닌 그렇게 실제 믿고 있다는 것
개신교 발(發) ‘가짜뉴스’, 어떻게 봐야 할까?
2018. 11. 25 by 김반석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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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여러 가지 교계 안팎의 논란 중에서도, 소위 ‘개신교 발(發)가짜뉴스’의 문제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볼까 합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카카오톡 등을 통해서 ‘긴급기도요청’ 등의 제목을 달고 퍼져나가는 허위·과장정보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이것이 본격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지난 9월 말, 한겨레신문사가 기획보도를 통해 온라인상의 허위·과장정보의 진원지를 추적한 결과, 그 중심에 E 단체가 있었음을 밝혀내면서부터입니다. 한겨레 측은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등의 분석기법을 통해서 허위·과장정보의 유통경로를 추적했고, 그 결과 핵심 유통 경로의 중심에 극우 개신교 단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동안 보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허위·과장정보가 광범위하게 유통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카톡교’라는 신조어로 놀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정황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교계 안팎으로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요. 이 보도의 주요 타겟이 된 단체는 즉각 반박문을 내며 ‘교회를 말살하기 위한 음모’로 규정했지만, 한겨레 측에서는 이에 대해서 재반박문을 내면서 구체적인 정황 증거들을 제시했지요. 그리고 해당 단체의 활동이 전 정권의 여론 공작과도 연결되어 있었다는 의혹과 증거들을 제기하면서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왜 기독교에서 ‘가짜뉴스’가 나올까?: ‘가짜뉴스’ 프레임이 놓치고 있는 것들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보수 기독교는 왜 이렇게 거짓 정보를 만들고 이를 공유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정보들에 대해 진위 판단을 하지 못하고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개신교 대중들의 무지를 지적하거나, 목사들의 권위가 절대화되어 교인들이 교계 지도자들의 권위를 맹신하게 된 현상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사실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짜뉴스 현상의 원인을 이렇게만 돌리기에는, 우리의 선배 신앙인들을 지나치게 경멸하고 타자화하는 결과로 귀결될 우려가 있습니다. 제가 그 동안 여러 번 강조해 왔지만, 우리의 기준으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해 그들의 판단력의 부재를 탓하거나, 악한 사람들, 내지는 ‘빻은’ 사람들로만 취급하는 것은 문제를 자칫 단순화시키고 소모적인 대결 구도로 귀결시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는 다가가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기독교 내 허위, 과장 정보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카톡으로, 유투브로, 그리고 교회 내에서의 언설들 가운데 허위 정보를 분별하지 못하고(혹은 아니하고) 계속 공유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CBS의 변상욱 대기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개최한 가짜뉴스 관련 포럼에서 그 중요한 이후로 기독교인들의 상실감과 위기감을 꼽습니다. 특히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에서 보수 기독교가 중요하게 기대고 있던 반공주의적 세계관에 균열이 생긴 상황에서, 그리고 그토록 경계하던 ‘좌파세력(?)’이 집권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불안감과 위기감이 가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감을 상대방에게 투사하여, 종교인 과세에 대해 (이미 전 정권에서부터 계속해서 추진되어 온 것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좌파정권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이슬람이나 난민, 동성애자들 때문에 사회가 파괴되고 어지러워질 것이라고 하며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지엽적인 사실을 과장하여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데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2017년을 전후한 한국사회의 정치적 지각변동이 기독교인들의 불안감과 위기감을 고조시켰고, 그것이 적대적 타자에게 광범위하게 투사되면서, 사실관계에 대해 성찰할 틈도 없이 완고한 인식의 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가짜뉴스’라는 단어와 프레임의 사용을 주저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가짜뉴스’의 정의에 대해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언론진흥재단에서는 이를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 정의했습니다(정재영, 2018에서 재인용). ‘언론보도의 형식을 하고’라는 부분을 배제하고 조금 넓게 본다면,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가짜뉴스가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된 거짓 정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교회 내의 거짓 정보들을 ‘가짜뉴스’로 규정해 버리면,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를 유통시켜 한국사회를 어지럽게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논란 이후로 보수 개신교계를 거짓과 날조의 온상으로서 지목하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왜곡된 세계관을 가졌다는 것이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들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혐오를 조장하고 선동하는 것일까요? 제가 그동안 숱하게 보고 들어 왔던 허위정보를 믿고 유통하고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모종의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진정성’이라 함은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뜻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믿고 열정적으로 그러한 행동들을 한다는 뜻입니다. 거짓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러한 타자들이 교회와 사회를 위협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확신이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는 이분법적 구도와 맞물려 세상을 보는 세계관으로 굳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같은 이슈를 보더라도 이를 반대 세력의 음모로 읽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로 허위/과장 정보를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가짜뉴스’ 프레임이 놓치는 점이 이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말 보고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왜곡된 세계관을 가졌다는 점에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교회 내의 허위/과장 정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교회 내의 허위/과장 정보는 단순히 교회 내의 루머들에 대해서 열심히 팩트체크를 하고, 팩트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는 것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이것이 팩트다’라며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받아들여질 수가 없습니다. 페이스북 등에서 기독교 내의 핫 이슈와 관련해 반대자들끼리의 말다툼이 몇백 줄을 넘어가면서 ‘노답’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 내의 허위정보에 대해 분별하고 팩트체크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일차 자료로서는 의미가 있어도 그것 자체로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간에는 가짜뉴스 유포자들을 처벌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이러한 가짜뉴스들이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한국교회를 고립시키고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도록 만들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가짜뉴스의 뿌리를 당장 뽑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 대응은 오히려 역풍(backlash)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선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그들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교활한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대로, 자신의 신앙 양심대로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들에게 ‘너희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라면서 비난한다면, 그들로서는 억울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진리’가 위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겠지요. 거기에 가짜뉴스 유포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처벌’한다면 오히려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의를 위해 핍박받고 있다’며 자신들의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하겠지요. (사실 차별금지법 관련 주장의 주요 골자 중 하나가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 처벌을 받는다” 등인데, 가짜뉴스를 이유로 처벌을 하게 되면 보수 기독교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우려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었다고 받아들여 더욱 극렬하게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상황을 극단적인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결과로 귀결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미 한겨레 보도 이후로 E 기도운동과 일부 기독교 언론들이 보이는 반응들이 그러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행법을 통한 처벌의 문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사실 허위/과장 정보는 표면적인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 이면에 있는 한국교회의 불안감, 위기감의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9년간의 보수 정권이 국정농단과 부패, 거짓의 연속으로 무너졌을 때, 반공보수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던 한국교회는 큰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이것이 좌파세력의 음모가 아닌가?’라는 막연한 의구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현대판 바울(응?)’로 불리는 법학자 이 모 교수가 동성애와 페미니즘을 ‘신맑스주의’와 연결시키며 좌파세력의 전복 음모로 꿰어낸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와 사회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옳은 팩트를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두려움이 사실은 별 것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며, 오히려 지금의 후기근대의 사회 속에서 기독교만이 복음으로 구축할 수 있는 자리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복음의 진리에 대해 자신이 있고 당당하다면, 지금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애써 막아야 할 어떤 것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변화를 뛰어넘어 복음의 언어로 해석하고, 전유하며,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얼마나 무섭고 더러운 존재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붙들고 있는 복음이 얼마나 탁월한가’에 집중하면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능성들을 보여주면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을 치유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상상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쌓은 성벽

지금의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로 고립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교회가 붙들고 있는 진리가 위협당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속에서 한국교회는 두려움으로 더욱 문을 걸어잠그고 있습니다. 청어람 ARMC의 양희송 대표는 이러한 상황을 <진격의 거인> 초반에 나오는, 거인들을 보고 성 안으로 숨는 사람들에 비유합니다(양희송, 2018). 마치 거인들을 무서워하여 성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처럼, 한국교회는 더욱더 문을 걸어잠그고, 성문 밖에 있는 종북좌파, 동성애자, 이슬람이 얼마나 무섭고 추악한 존재들인지를 곱씹고만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느끼는 청년들이 하나둘씩 교회를 등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성문 밖으로 나올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의 무장을 풀고, 세상을 마주하며, 그 한가운데에서, 대범하게 복음의 영향력을 드러낼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고, 세상 가운데로 담대히 나아가 화해와 치유, 평화의 복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저들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존재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고백하는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가’로 돌린다면, 더 이상 동성애, 이슬람에 대한 ‘가짜뉴스’에 굳이 호소하지 않아도 오히려 훨씬 창조적인 방식으로 세상 가운데 복음의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할 때, 세상은 교회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아직 많이 요원합니다. 솔직히 내가 무슨 시나리오를 쓰고 있나 싶기도 합니다. 답답하고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시도 ‘지금의 교회가 얼마나 어리석은 실책을 저지르고 있는가’에 집중하여 분노하기보다,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삶으로 살아 나가야겠지요. 포기하지 말고, 그분의 크심을 기억하며,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갑시다.

 

* 참고문헌
변상욱, “가짜뉴스는 누가 만드는가? - 기독교를 중심으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한국교회 가짜뉴스에 대해 말하다> 자료집』,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18.
양희송, 『세속성자』, 서울: 북인더갭. 2018.
정재영, “가짜뉴스의 발생 원인과 대응 방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한국교회 가짜뉴스에 대해 말하다> 자료집』,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18.

 

글쓴이 김반석은 남서울교회 청년이며, 이글은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https://www.facebook.com/banseok.kim.77/posts/2205840086115459)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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