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 정한욱
  • 승인 2018.06.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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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조선자본주의공화국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비아북, 2017년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조선자본주의공화국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비아북, 2017년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조선자본주의공화국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비아북, 2017년

 

 

『조선자본주의 공화국』은 로이터 서울 주재 특파원으로 로이터 TV 와 BBC 라디오에서 북한 관련 방송을 하고 있는 제임스 피어슨과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역임하고 청와대 해외언론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다니엘 튜더가 급격한 변화의 길로 접어든 현재 북한의 모습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북한을 다룬 매체들이 김정은과 핵무기 프로그램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맞출 뿐, 북한 사회가 실제로 지금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평양 엘리트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연관시켜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현재 대단히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북한 사회는 일반 주민에서부터 고위 엘리트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로 벌어먹고 살아가는 ‘자본주의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 책이 “현대 북한의 생생한 이야기, 즉 2500만 북한 주민의 삶의 극적인 변화상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입문서”가 되기를 소망한다. 흥미로운 부분을 간략히 요약하고 간단한 단상을 덧붙여 보기로 한다.

자본주의화되는 경제  현재 북한 경제에 공산주의나 집단화 같은 딱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장마당’이라 불리는 개인 대 개인 시장이 번성하면서 여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20만에서 많게는 30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90년대의 대기근을 전환점으로 공식적인 국가 배급체계가 무너지면서 국가와 국민 간의 유대관계가 크게 약화되었고, 주민들은 더 이상 붕괴된 배급체계에 의존하는 대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자본주의를 통한 각자도생을 시작했으며, 정부의 위상 역시 유사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변한 북한 사회에서 경제의 유일한 조정자에서 여러 경제주체의 하나로 축소되었다. 오늘날 북한 주민의 다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정해준 직장에서 일하고 국가에서 지급하는 월급을 받는 공식경제와, 장마당을 포함해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폭넓게 통용되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돈을 버는 회색시장 경제라는 이중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적으로 파탄 상태에 빠진 중앙정부의 지원이 사실상 끊긴 정부 산하기관들도 ‘민관 자본주의’라는 방식을 통해 자체 예산을 독자적인 방법으로 확보하고 있다. 북한의 핵심 지도층도 이러한 자본주의의 영향이 자신들의 국가 통제력 유지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시장을 근절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북한 지도층은 사회의 시장화와 더불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다양해지는 여가 생활  외부에서 북한 주민들을 세뇌된 로봇이나 무기력한 희생자로 그리는 것과 달리 북한의 보통 사람들도 나름대로 삶을 즐기고 여가를 누리는 데 관심을 가지며, 점점 이런 욕구들을 국가가 둘러친 우산 밖에서 만족시켜 가고 있다. PC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DVD나 USB 메모리스틱에 담겨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외국 방송매체와 영상물 같은 미디어파일에 접하고 있으며, 한 통계에 의하면 북한 주민의 적어도 절반은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대중가요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0년을 전후해 급속히 확산된 뇌물 문화 때문에 한국의 방송물을 가지고 있다가 체포되더라도 대부분 뇌물을 주고 풀려날 수 있다. 그러나 대기근 이후 일어난 소규모의 정보 혁명이 북한 체제에 대한 증오나 체제 변화 욕구의 증가를 촉발한 것은 아직 아니며, 북한 주민 다수가 볼 때 한국 방송 매체나 영화를 시청하는 것은 정치적 행동이라기보다 북한 내에 즐길 것이 귀하고 드물기 때문에 오락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북한이 인터넷망을 외부와 연결시킬 가능성은 아직 없지만, USB 드라이브를 사용해 외부의 영상물을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PC가 국가의 정보 통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은 매우 커 보인다. 원래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춰 평양에는 성공한 신흥 상업계급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바와 움식점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과거에는 엘리트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휴양지도 이제는 돈만 있으면 누구든 들어갈수 있다. 이들 신흥 부자들은 더 이상 돈을 쓰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복합적인 권력 체계  외부적으로 볼 때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획일화된 일심동체처럼 보이는 북한의 권력체계 안에는 사실 경쟁적인 분파와 권력 브로커의 집합이 존재하며 이들은 정치적 통제권과 영향력, 돈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 김씨 일가 숭배를 토대로 김정일이 구축한 이 체제의 배후에는 '조직지도부'라 불리는 무소불위의 권력구조가 존재하며, 김정은 자신도 그런 구조 위에 제한된 권위를 물려받았다. 장성택이 조직지도부 수뇌부 및 연계 세력과 경쟁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김씨 가문 외에 유일하게 주요 권력 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그의 숙청이 어떤 이유와 과정을 거쳐 일어났든 그 최대 수혜자는 조직지도부였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20만의 주민이 갇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일반적 교도 기관에 구금된 사람까지 포함된 숫자일 가능성이 많으며, 일반 범죄로 투옥된 사람이 7만명, 정치범은 8~12만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 범죄자들은 인민보안부 관할로 범죄의 경중에 따라 구류장, 집결소, 노동단련대, 교화소에 수감되며 가혹한 대우를 받지만 석방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관할하며 사실상 사법 체계와 법원 영역 밖에 존재하는 정치범 수용소에 일단 수감되면 잔혹한 대우를 받으며 죽을 때까지 굶주림과 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패션과 휴대전화  북한에서 의복은 보수적이며 눈에 띠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헤어스타일 역시 국가에 의해 공인된 몇 가지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1990년의 대기근을 전환점으로 사람들이 정부의 통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주민들이 한국 방송을 포함한 해외 매체를 점점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그간 금기시되어 왔던 과감한 패션을 선보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별히 이념의 수도인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대단위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청진이 새로운 패션의 수도로 떠오르고 있다. 쌍거풀 수술도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흔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젊은 커플을 위해 시간제로 방을 대여해 주는 가내 산업이 유행하고 있다. 대기근 이후의 시장화 덕분에 경제적 여유가 생긴 계층이 생기면서 만만치 않은 가입비와 유지비에도 불구하고 전체인구의 10퍼센트 이상인 25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휴대전화 서비스에 가입해 있으며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치품이 아니라 사업에 필수적인 도구로 여겨지고 있다. 북한 접경지역에서 중국 이동통신망에 연결하는 것은 중대한 불법행위로 간주되지만, 북한의 국가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사업에 필요한 통신과 거래능력을 확보한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분화하는 북한 사회  오늘날 북한 사회를 분할하는 세 가지 영역은 사회계급과 출신 민족, 그리고 출신 지역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옛 사회질서를 폐지하고 정부에 대한 충성심에 기초한 새로운 계급체계를 구축했으며, 전 주민의 28퍼센트가 충성계층, 45퍼센트는 중립, 27퍼센트는 적대계급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대기근 이후 다소 힘을 잃었으며, 자본화된 오늘날의 북한에서는 경제적 성공으로 좋은 성분을 살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성분의 효과, 즉 대학배치, 직장, 아파트, 의료시술, 이동의 자유, 기소나 처벌의 면제와 같은 부분은 살 수 있게 되었다. 성분이 낮은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먼 지방으로 추방한 결과 평양은 높은 성분만 밀집해 사는 지역이 되었으며, 북한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도 평양과 국경인접지역인 북동부 지역에 몰려있게 되었다. 이 중 평양 사람들은 북한 체제의 모순을 참고 견디는 데서 얻을 것이 훨씬 많지만, 평양에서 먼 함경북도나 양강도는 전통적으로 주류에서 소외된 지역인데다 중국과의 접촉도 잦아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화교는 북한에서 최빈곤층에 속했으나 1980년대에 와서는 중국을 방문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면서 민간 교역의 독점권을 쥐고 북한 엘리트층 이외에 가장 눈에 띠는 부유층 집단으로 변신했다.

북한은 붕괴할 것인가?  대기근의 여파로 북한의 사회계약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그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경제적, 사회적 행동에 대한 정부의 규정을 무시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심지어 법을 강제해야 할 관리들마저 일반 시민들 못지않게 규정을 어기고 있으며, 지난 20년을 전후해 확산된 뇌물 문화 때문에 북한은 극도로 부패한 사회가 되었다. 북한 정부는 파산상태고 배급체계는 무너졌으며, 시장만이 북한을 새로운 재양에서 지켜 주는 유일한 방책이다. 따라서 북한 정부 입장에서도 붕괴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시장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눈덩이는 굴러가기 시작했고 어디서 멈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북한의 정치적 통제력은 여전히 강고하며, 신흥 자본가 계급은 기존 엘리트를 전복하려 하기보다 결혼과 사업과 유착을 통해 엘리트 계급에 편입하려 한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는 완료됐으며 그를 둘러싼 파워 그룹 연합체가 권력을 장악한 상태다. 결국 현 정권 지배하에서의 점진적 개방이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결국 북한은 90년대의 대기근 이후 상당한 수준으로 자본주의화되면서 밑바닥부터 바뀌고 있으며, 최근 북한과 그 지도자인 김정은이 보여주는 놀랄 만한 변신은 바로 이런 격변의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냉전체제가 끝난지 이미 한 세대 가까이 지났고 마침내 전쟁의 소식만 가득했던 한반도에까지 거스를 수 없는 평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과거의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채 사사건건 평화의 발걸음을 훼방하고 있는 수구냉전세력의 행태를 보니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휴전 후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북한과 한국의 수구냉전세력 중 끝끝내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집단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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