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의식적인 소비가 누군가의 빈곤을 고착화한다
나의 무의식적인 소비가 누군가의 빈곤을 고착화한다
  • 정한욱
  • 승인 2018.06.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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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순, 빈곤의 연대기 제국주의, 세계화 그리고 불평등한 세계, 갈라파고스, 2015년
김희순, 빈곤의 연대기 제국주의, 세계화 그리고 불평등한 세계, 갈라파고스, 2015년
김희순, 빈곤의 연대기 제국주의, 세계화 그리고 불평등한 세계, 갈라파고스, 2015년

1800년대 이후 세계는 놀랄 만큼 부유해졌지만 부의 불평등 역시 지속적으로 심화되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1800년대나 지금이나 번영의 수혜를 누리지 못한 채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한 국가의 부와 빈곤이 정치체제나 경제체제 ‧ 자원이나 지정학적 위치 ‧ 국민성과 같은 내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개발이론가들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선진국 발전의 상당 부분이 강제적인 식민 분업체제의 형태로 주변부 국가들을 침탈하고 착취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현재도 선진국의 발전과 개도국의 저발전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불공정한 세계체제는 꽤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왔으며,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집바브웨, 소말리아, 과테말라, 방글라데시, 볼리비아 등 대표적인 저개발 국가들의 빈곤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과정을 선진국의 부와 개도국의 빈곤이 깊이 맞물려 있다는 세계체제론의 관점에 기반해 서술한다. 따라서 이 나라들이 가난해진 원인을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현재까지 여러 형태로 변형되고 고착된 불공정한 세계체제에서 찾는다.

저자들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홍차, 바나나, 다이아몬드, 장미, 새우 등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최빈국 민중들의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의 생산과 무의식적인 소비가 그들의 빈곤을 어떻게 고착화시키고 심화시켜 왔는지 설득력 있는 필치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1492년에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도착하는 것으로 귀결된 콜럼버스의 모험은, 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혹은 유럽-아메리카-아시아로 이어지는 대륙 간 불균등 교역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세계화(1차 세계화)는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으로의 식민지 확대로 이어졌고, 이 세계화의 역사는 사실 이 지역의 빈곤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 무력을 이용한 무자비하고 세련되지 못한 약탈을 통해 이 연대기의 첫 부분을 써내려갔던 스페인 제국이 넘치는 부를 호화로운 생활과 패권전쟁에 소비하며 17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걸었다면, 이후에 등장한 영국 등 유럽 제국들은 식민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원료를 구입해 본국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비싼 가격에 파는 등 제조업의 우위와 불공정 무역이라는 좀 더 세련된 형태의 약탈과 이에 따르는 상업자본과 금융부문의 성장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발전한 산업혁명과 시장경제의 조류에 합류한 국가들은 부를 누린 반면 그렇지 않은 국가들을 쇠퇴하고 말았다.

이렇게 서구의 제국들이 기술혁신으로 인한 산업혁명과 동인도 회사와 같은 자본과 국가의 연합체를 통해 자행한 식민지와의 불공정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동안 피식민 국가들은 더욱 빈곤해졌다.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일종의 폭력적 약탈을 통해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가 강제로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으며, 인도인들은 영국 사람들의 홍차 중독을 만족시키기 위해 3천 년 이상 꽃피웠던 면방직 산업을 버리고 차밭이나 아편밭의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또한 풍부한 지하자원을 소유한 남아공이나 콩고민주공화국 같은 나라들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결탁한 부패계층이 자행하는 ‘도둑정치(kleptocracy)’나 이권을 둘러싼 끝없는 분쟁에 의해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는 ‘자원의 저주’에 빠져 있다. 중앙아프리카의 ‘바나나 공화국’중 하나인 온두라스 정부는 거대한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면서 실질적인 총독 노릇까지 자행했던 유나이티드 프루트 같은 거대 미국 농산물 기업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자국민의 안전이나 이익, 생존권 등을 기꺼이 희생시켰다.

냉전시기에 소련과 미국은 한 나라라도 더 자국의 우방으로 만들기 위해 자원뿐 아니라 군사력, 무기까지도 기꺼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제공했고 냉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아프리카 국가들은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에 휘말렸으며 이는 그들의 빈곤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켰다.

국가가 주체가 되어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던 이전에 비해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과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좀 더 확대되었다. 초창기에 개별 국가의 정책 독립성을 인정하며 작동하던 IMF나 세계은행은 자본의 이동이 대규모로 일어나면서 국가정책이 국제시장의 화폐 흐름에 종속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빈곤국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긴축재정과 구조조정, 무역자유화, 민영화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칠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에 의해 구조조정을 실시한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과 르완다와 소말리아를 비롯한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은 파산하거나 와해되면서 ‘지상의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으며, 이 와중에 선진국 선박들의 유독성 폐기물 방류 및 외국 대형 어선들의 물고기 싹쓸이로 어장까지 황폐화된 소말리아의 어민들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책으로 해적으로 변신하고 있다.

냉전 이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급속도로 몸집을 불린 다국적기업들은 국제적 분업 체계에 따라 멕시코나 방글라데시 같이 더 인건비가 싸고 환경규제가 약한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으며, 빈곤국 정부들은 기업들이 생산공정을 다른 국가로 이전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임금, 근로조건, 환경 규제 등을 설정해주고 있다. 이러한 산업의 국제적 이주는 카킬이나 붕게 같은 소수의 초국적 농수산물 기업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농업 분야나 IT 기반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으로 대표되는 서비스업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네델란드의 화훼 산업을 유치한 케냐의 나이바샤 호수가 오염되고 동남아의 울창한 맹그로브 숲이 새우 양식을 위해 대규모로 파괴되는 등 빈곤한 국가의 경제나 사회뿐 아니라 환경에까지 심각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도시 주변에 불법으로 조성된 위험한 거주지인 파벨라에서 살아가는 멕시코인들, 프랑스로 이주해 온 북아프리카의 이민자들,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차별받으며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 등 다양한 세계화 시대의 유민들이 탄생하고 있다.

부유한 나라의 안락한 삶이 일정 부분 빈곤국의 희생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원조는 양심과 도덕의 문제라기보다 의무와 책임의 문제일 수 있으나, 제프리 삭스와 이스털리의 논쟁에서 잘 드러나듯 국제원조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냉전시대에 체제경쟁을 위해 개도국에 대폭적인 원조를 제공하던 미 소 양국은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대외원조액을 대폭 낮추었으나, 2000년대 이후 아프리카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911사태를 계기로 빈곤이 테러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증가하면서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부유한 국가들은 새천년개발목표(MDGs)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중심으로 다시 국제원조를 늘이는 추세에 있다. 또한 1980년 이후 세계의 불공정한 교역구조를 좀 더 공정하게 개선하고자 선진국의 시민사회가 주도해 만든 국제적 시민운동인 공정무역은 일정한 수준의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불공정한 소비구조에 기초해 사회정의를 모색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유시장만큼이나 경쟁적으로 변해 ‘공정’이라는 정신이 훼손받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적 불평등을 분석한 세계체제론이나 급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이 빈곤국에 제시했던 대안은 자본주의 부국들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사회주의적 발전경로를 채택하거나 혹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모색하기 위해 강력히 연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구조적 요인과 이분법적 구획에 집착하는 사이에 세계는 보다 복잡하게 변했고 빈곤국 중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의 몇몇 국가들은 크게 약진했으며, 그들의 조언에 따랐던 나라들은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에 실패했다. 한국이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주는 탈바꿈한 유일한 사례라는 사실은 그만큼 세계체제가 구조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며, 우리의 희귀한 경험을 일반화하여 빈곤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통해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브라질의 쿠리치바나 책임 있는 포퓰리즘으로 조금씩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는 볼리비아처럼 아직은 미약하지만 빈곤국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제 3의 길, 새로운 대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곤의 연대기』는 본문만 400여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제법 부피가 있지만 한번 잡으면 중간에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다. 삶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나 재화들을 통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빈곤국의 가난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흥미진진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로 세계체제론의 관점에서 빈곤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지만, 그 이론이 제시하는 해결책의 현실적 한계와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다만, 빈곤국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대안에 주목해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원조나 공정무역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도 밝혔지만 우리의 부가 세계의 가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세상의 가난을 돕는 일은 단순히 우리의 양심과 도덕의 문제라기보다 가난한 자들의 권리이자 우리의 의무(Right Based Approach)이다. OECD의 DAC(개발원조위원회) 소속으로 이미 2017년 해외원조액 규모가 국민총소득의 0.16%인 3조원에 육박하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더 이상 ‘하느나 마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잘 할 것이냐’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체제의 부정의를 인식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그 해결을 고민하는 것과,  나와 우리 공동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실천하는 일은, 세계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두 날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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