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박진영씨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누가 박진영씨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 심용환
  • 승인 2018.05.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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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는 법인데, 박진영씨가 구원파라는 것이 굳이 문제될 이유가 있을까? 여튼.. 굳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가 무엇을 믿는가가 아니라 그가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 소위 간증의 '방식'이다. 한국에서 기독교류의 간증문화는 그것이 정통과 이단을 가리지 않고 매우 '비합리적'이며 '맹목적'이다. 물론 오롯이 합리적인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은 슬픔의 강. 이 강을 어떻게라도 건너기 위해 '믿는 것'이니 어찌 모든 것이 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일 수 있겠는가.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본다면 알베르 카뮈가 이야기했듯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인간과 존재의 이유가 없는 세계', 즉 부조리의 상태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며, 굳이 믿음을 긍정하더라도 파스칼이 이야기했듯 '안믿기에는 넘쳐나는, 하지만 믿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것이 신앙의 합리성 아닌가. 오죽하면 키에르케고어는 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수영장 다이빙 대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던가.

그러나 이건 정도가 심하지 않는가. 기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의 비합리성은 합리성을 토대로하며 또한 합리성 따위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위대함, 어떤 숭고함, 그윽함과 경지 같은 것들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에서는 머리를 밀고 모든 생의 욕망을 포기한 후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작금의 한국 교회(이단을 포함한)의 간증이나 신앙고백을 보고 있으면 이건 완벽하게 정신이 나간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진영씨가 무엇을 믿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게 되었을 때 자신이 믿는바에 대해 너무나 말도 안되는 논리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 그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한 번 종교를 받아들이고나면 '말이 안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말도 안되는 생각이 가능한 생각'이 된다. 이게 어찌 당연한가. 성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매번 말이 안되고, 매번 미친놈 수준의 행동들이 이어지고 있는가? 전혀 반대이지 않는가. 사람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도우며 가르치고, 그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며, 만민이 누릴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메달려서 완전히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한 것 아닌가. 불가능과 비합리, 기적이란 것은 모조리 가능한 노력, 지극히 합리적인 현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탄한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적인 것들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 뿌리내린 기독교적 신앙이란 그 수준이 어떤가. 사실상 무속 신앙에서 보여주는 그 말도 안되는 저열함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그렇기 때문에 부작용은 어마어마한 형태로 번지는 것 아닌가. 기이한 과정을 통해 믿게 되었으니 목사가 만져도 꾹 참아야 하고, 목사가 부정과 전횡을 해도 모두 눈감아야 하며, 몇 억씩 사기성 요구를 해와도 가져다 바쳐야 한다. 지천에 수천억 깔린 교회는 계속 지어지고 있고, 자기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면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켜도 정작 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비일비재한가. 이유가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이런 간증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누가 이따위 수준을 보고 믿으려 하겠는가. 박진영이 구원파라고 수군되며 마치 본인이 대단한 정통 신앙을 믿고 있다고 자부하기 전에 냉정히 따져보자. 도긴개긴 결국 반미치광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아닐까? 아니라면 증명해보이라, 본인이 믿는 믿음이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참되며, 안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존경을 받으며 인정을 받는지. 얼만큼 정상적이며 그윽하며 감히 일반인들은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찬란하게 아름다운지를 말이다.

올해는 마틴 루터킹 목사가 서거한지 꼭 50주년 되는 해이다. 흑인 노예들이 인간이 되었고, 다시 그들이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몸부림친 세월, 그 가운데 루터 킹 목사의 죽음이 있었다. '나에는 꿈이있습니다'라는 연설은 흑인과 백인의 화해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 배경은 이사야서이다. 유태인 멸망의 때에, 신의 목소리를 들은 이사야는 노래한다. 메시아가 오면 우리뿐 아니라 이집트인, 아시리아인 모두가 그의 목전에서 함께 노래하는 구원의 날이 온다고. 기독교란 그런 종교 아닌가. 그런데 대관절 올해 한국교회에서 누가 마틴 루터킹 목사를 기억이나 한단 말인가. 애간장이 끊어질 지경이다. 다 놓아버리고 포기하고 싶다. 정말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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